- 강경화-고노 외무상 입장 갈려
- 한일청구권협정 정부대응 관심
- 준수 땐 ‘굴욕 외교’ 여론 부담
- 판결 존중 땐 일본 반발 불보듯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국제신문 31일 자 3면 보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주목된다. 정부는 ‘피해자 상처 치유’와 ‘한일 미래지향’을 동시에 거론했다. 정부가 국내 여론과 한일관계 중 어디에 무게를 두든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어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31일 일본 고노 외무상과 전화 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번 판결과 관련된 사항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토대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방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반면 교도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고노 외무상은 통화에서 “한일 간 법적 기반이 근본적으로 손상됐다는 점을 일본이 무겁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이 확연한 입장 차를 보인 대목이다.

정부의 향후 대응 방안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달렸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는 우선 징용공의 개인청구권이 협정 범위에 있다는 한국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있는가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의무가 한국 정부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되고, 결과적으로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경우 대일 굴욕 외교라는 국민적 반발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반대로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양국 간 외교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소송의 이행 및 추가 소송 절차가 빨라지는 반면 일본은 우리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집었다고 비판하면서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하되 부담은 우리가 지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정부가 배상 책임을 이행하는 것은 법적으로 맞지 않고, 명분상으로도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 판단에 따른 책임을 왜 우리 정부가 지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재판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추가 개입을 자제하되 향후 예상되는 추가 소송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제 조치나 기업-피해자 간 화해 주선에 노력하고, 이를 근거로 일본 측의 협조적 입장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선 정부 차원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국민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