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권 개헌이 바꿔놓을 일상

- 사건·사고 ‘뒷북 대응’ 경찰
- 주민 요구에 즉시 치안 조치

- 사드 여파 같은 관광악재 땐
- 지역 크루즈 산업 키울 수도

- 지방분권 10년 넘은 日·佛
- 개혁으로 행정·재정 효율화

김분권(가명) 씨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난 뒤 식은 아침밥을 먹으며 조간신문을 펼쳐 들었다. 부산 사하구 장림동에 사는 여중생들이 친구를 때려 피투성이로 만들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돼 있었다. 또래 딸을 키우는 김 씨는 엄마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TV를 켜니 마침 이 사건과 관련해 부산시의회 시정질의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시의원들의 질타에 부산시 경찰국장은 하교 후 우범지대에 치안인력을 대폭 강화하는 등 학교폭력에 관한 대책을 당장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풍경이다. 예전 지방경찰청 시절에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나 돼야 경찰의 대책을 ‘겨우’ 들을 수 있었던 것과 대비된다. 경찰이 지역주민의 치안 요구에 즉각적으로 나선다는 것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명 안심되는 일이다.

신문의 다른 면을 펼쳤다. 사드 갈등으로 관광객이 줄자 부산시가 타개책으로 낙동강에 배를 띄우기로 했단다. 이번 주말부터 가동한다니 김 씨는 토요일에 가족과 유람선 나들이나 가볼까 생각하며 여행 일정을 세웠다. 강과 바다에 배를 띄우는 일이 이제는 지방정부 소관이라고 한다. 관광수입 증대로 인한 부산경제 활성화가 기대됐다.

낙동강 하구 얘기가 나오니 근처 다대부두 문제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유행어로 ‘스튜핏’한 정책이었다. 해양수산부가 600억 원 가까이 들여 1998년 부두를 개항했으나 지방정부는 배후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립했다. 이에 따른 민원 때문에 부두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점 휴업’ 상태다. 지방분권이 시행됐으니 이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엇박자를 내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더는 없겠다고 김 씨는 생각했다.

김 씨는 우리나라가 개헌을 통해 강력한 지방분권을 추진한 게 늦었지만 다행이라 본다. 선진국들은 이미 2000년대 들어 유행처럼 지방분권을 실현했다. 강력한 중앙정부의 국가였던 프랑스는 200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분권시대를 개막했다. 프랑스 헌법 제1조에 ‘국가조직은 지방분권화돼야 한다’를 명시하고 자치입법권, 재정지출의 자주성, 재정 격차 해소를 위한 재정 조정 제도 등을 시행했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중반 강력한 지방분권 개혁을 실시했다. 국고보조금을 개혁하고, 세원을 지방에 이양하는 등 내용의 ‘삼위일체’ 개혁이 시행되고, 자치입법권 확대를 골자로 한 지방분권개혁추진법이 2006년 통과되면서 지방분권시대를 열었다. 1999년 3229개였던 시·정·촌(일본의 기초자치단체 단위)을 2010년 기준 1727개로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등 대규모 자치단체 통폐합을 통해 행·재정을 효율화했다.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미래사회에 대비했다. 21세기는 국가 간 경쟁이 아닌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경제권 간의 경쟁 사회임을 미리 인식하고 이에 맞는 진용을 갖춘 것이다.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우리나라는 뒤처져 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길을 가면 된다. 김 씨는 2018년 6월 개헌 국민투표로 실현된 ‘지방분권’의 도시 부산에 살고 있다.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