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윗선으로 지목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17일 소환했다. 현직 장관이 특검에 소환되기는 처음이다. 이른 시일 안에 구속영장이 청구될 가능성도 크다.

두 사람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의 피의자 신분으로 이날 소환됐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특정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정부 지원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블랙리스트는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작성해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넘겨져 실행됐다. 그 과정에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지시·관여가 있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특검팀은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정부 지원에서 제외한 행위를 "용납하지 못할 비민주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반면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모두 블랙리스트를 보거나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조 장관은 이날 특검에 출석하면서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채 조사실로 향했다.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청와대 2인자이자 '대통령의 그림자'로 불리는 비서실장을 지냈다. 조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다.

김 전 실장은 특히 재임 당시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와 지원 배제의 '총지휘자'라는 의심을 산다. 특검팀은 이미 확보한 증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의 지시·관여 여부를 확인하고 조만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 12일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김종덕(60) 전 문체부 장관과 정관주(53)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56)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구속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의 '몸통'으로 거론돼 온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이 모두 특검에 소환되면서 리스트의 실체와 청와대 개입 여부 등을 규명하는 특검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추가로 더 소환할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의 소환에 앞서 후임인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실장은 현 정권에서 국가정보원장도 지냈다. 특검은 이와 함께 블랙리스트 작성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계속 확인할 방침이다.

박 대통령이 2014년 11월 CJ그룹 손경식 회장과 안가에서 개별 면담을 할 때 CJ 방송과 영화의 편향성을 지적하면서 불만을 표출했다는 의혹도 있다. 아울러 특검팀은 명단 작성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해서도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조사 이후 상황에 따라 수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