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칙주의' 아이콘에 대한 배신감…분노 넘어 국민 패닉

- "일단 내각 총사퇴, 추이 보자"

- 젊은층에선 격한 분노·허탈
- "국민이 맡긴 권력, 崔가 횡령"
- 세대 가리지 않고 책임 물어

- 박 대통령 긍정평가 14% 최저

최순실(60) 씨 국정 농단 의혹으로 여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꼽히던 부산 민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분노가 뜨거웠다.

28일 오후 박 대통령의 단골 방문장소인 부산 사상구 덕포시장. 상인 이종길(68) 씨는 "책임 있는 사람들은 빨리 옷을 벗고 최순실도 당장 소환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이 물러나는 게 순리인데 국정이 더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도 했다. 이 씨 부인 박분덕(64) 씨는 "서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미르·K스포츠 재단을 통해) 수백억을 꿀꺽하다니…"라고 허탈해했다.

박 대통령의 '하야'를 조심스럽게 전망하는 60대도 있었다. 주부 정모(64) 씨는 "내가 최순실 보고 투표한 줄 아나. 원칙주의자로 알고있었던 박 대통령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부전시장 상인 정모(69) 씨는 "일단 내각부터 총사퇴하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반응을 보였다.

젊은 층은 박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부산대 유영현 총학생회장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맡긴 권력을 최순실이 '횡령'한 것과 다름없다"며 "대통령도 예외 없이 조사해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치료사 허승룡(29) 씨는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탄핵이든, 하야든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 역사의 사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데 대해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박모(42) 씨는 "이런 판에 지지율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신신애의 노래 '세상은 요지경'이 생각난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동반 경영위기에 빠진 해운업계 민심도 차가웠다. 한 해운회사 선박 운항팀 감독 A 씨는 "한진해운 법정관리도 '대통령이 최순실과 협의한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결정 시스템이 이렇게 엉망인 줄 누가 알았겠나. 박근혜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김종민 대표는 "정상적인 국가가 민간인 한 사람에 의해 완전히 놀아날 수 있는가. 대통령이 '하야'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류광태 사무처장은 "거국 중립 내각이나 내각 사퇴는 최소한의 조치이다. 박 대통령이 정말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으면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다. 한국갤럽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인 지난 26, 27일 전국 성인 6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8%포인트)에서 긍정 평가가 14%에 불과했고, 부정 평가는 78%에 달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 기간 지역·연령·지지 정당·직업별 등 모든 응답자 계층에서 부정 평가가 많았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인 60대 이상(36%)과 대구·경북(27%) 등에서도 긍정 평가가 크게 낮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정유선 정철욱 김봉기 박장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