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개원(30일)을 앞둔 정국지형이 꿈틀대고 있다. 권력쟁탈을 목표로 하는 정치의 속성상 '실리'에 '명분'만 더하면 언제든지 정치지형은 바뀔 수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손에 의해 3당체제로 전환된 것이 1차 요인이다. 10여 년간 계속된 거대 양당체제는 국민의 불신을 샀고, 정치지형 자체를 변화시켰다. 여야 두 진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대선후보가 없다는 것이 2차 요인이다.

이는 여야 내부에서 '미래 집권'에 대한 불안이 고조되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국민의 정치불신과 미래 권력투쟁의 서막이 겹치면서 '이기는 길'을 찾기 위한 정치권의 '원심력'이 정계개편의 움직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당내 대선주자들이 총선에서 '상처'를 입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비박(비박근혜)계는 경계하고 있다. 친박계가 반 총장을 '옹립'할 경우 김무성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하는 비박계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정치판이 바뀔 수 있다. 야권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각각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공동대표라는 대선주자가 '진검승부'를 위한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야권의 두 대선주자의 틈바구니에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은 '새판'을 짜겠다고 선언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친정'인 새누리당 대신 독자적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것이다.


■ '대망론' 반기문 총장

- 국가 통합할 지도자 재강조
- 친박, 대권주자 '대안' 거론…혹독한 검증 통과엔 물음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6일 오전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제주포럼 개회식에 참석해 밝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여권의 정치지형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혀온 김무성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20대 총선 패배 책임론과 국회 입성 실패로 '정치적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친박근혜)계는 반 총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반 총장 역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반 총장은 지난 25일 제주에서 열린 관훈클럽과의 간담회(본지 26일 자 5면 보도)에서 "(총장 임기를 마치면)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임기종료 후) 가서 고민, 결심하고 필요하면 조언을 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 가능성을 넘어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26일 "언론이 확대해석했다"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이날 또다시 "(국가)분열을 시키는 사람이 리더가 돼서는 안 된다. 통합시키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사실상 여권 대선주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본인의 의지도 작용했지만, 오히려 대권주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여권 내 친박의 필요성이 더 작용한 측면이 크다. 반 총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반 총장은 권력욕이 어마어마하다. 여권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출마는 시간문제"라고 단언했다.

반 총장 대망론은 대중적인 인지도와 호감도에 충청권 인사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대구·경북(TK)을 핵심 기반으로 한 친박계는 지역적으로 영남과 충청이 결합하면 야권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반 총장이 정치경험이 없어 대선에 나설 경우 혹독한 검증을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고 있다. 야권이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볼 테면 해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반 총장이 실제로 친박계에 의해 후보로 옹립되는 과정을 밟게 될 경우 김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수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이미 반 총장의 대선 도전 가능성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해온 비박계가 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적 선택을 할 경우 여당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다. 손균근 기자 kkshon@kookje.co.kr


■ '빅 텐트론' 정의화 의장

- 싱크탱크 출범…중도 아우르기
- 여야 120여 명 발기인 참여, 새로운 정치 세력화 가능성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싱크탱크 사단법인 '새한국의 비전' 창립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정의화 국회의장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밝힌 '빅 텐트론' 구상의 실현을 위한 첫발을 뗐다. 정 의장이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여야 중도세력을 아우르겠다며 '새한국의 비전' 창립기념식을 했다. 정 의장의 구상대로 중도세력 결집이 이뤄지면 이는 곧 정계개편을 뜻한다.

새한국의 비전은 일단 싱크탱크로 출발하지만, 내년 대선 국면에서 신당 창당이나 정치적 결사체 구성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연구원장을 맡기로 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새한국의 비전 역할과 관련해 "차기 대선에서 탄생할 새로운 정권의 중요한 개혁 의제는 무엇이고 시행 방안은 어떤 게 있는지를 연구할 것"이라며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 과정에서 역할이 있다면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여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인사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새로운 정치 세력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120여 명의 발기인에는 새누리당 비주류 중진이자 원조 소장파격인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의 일원인 정병국 의원과 또 다른 비주류 중진 정두언 의원이 참여했다. 최근 새누리당 혁신위원장으로 내정됐다가 친박(친박근혜)계의 반발에 부딪히자 사퇴한 김용태 의원도 포함됐다. 유승민 의원의 측근인 조해진 권은희 류성걸 의원 등도 참여했다. 야권에서도 20대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진영 의원과 더민주 우윤근 의원,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뉴라이트 운동의 브레인 역할을 해 온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은 고문단에 포함됐다. 새누리당 친박계나 더민주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 세력을 제외한 정치권 각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한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향한 정 의장의 새로운 정치실험이란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참여 인사들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세력화에 한계가 있고, 이념적 지향점도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의장 퇴임 후 '정치인 정의화'의 영향력에 대한 회의론도 많다. 하지만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나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의 연대가 이뤄지면 정계 개편 국면에서 '태풍의 핵'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


■ '새 판' 손학규 전 상임고문

- 정계복귀 '치고 빠지기' 행보
- 야권 러브콜로 몸값 고공행진…명분·시기 저울질, 행선지 주목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지난 22일 일본 방문을 마친 뒤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거처로 돌아와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 내 대권 경쟁을 조기 점화시킨 이는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뒤 전남 강진에 칩거해오던 그는 지난 18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이번 총선의 결과를 깊이 새겨 '새 판'을 짜는 데 앞장서 나갈 뜻을 다짐하고자 한다"며 사실상 정계에 복귀했다.

그가 말한 '새 판 짜기'는 곧 정계개편이다. 발언 이후 손 전 고문은 이후 다시 칩거 모드에 돌입했지만, 그의 몸값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당발 정계개편론과 맞물려 정의화 국회의장과의 제4지대 신당론까지 다양한 시나리오가 부상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계 복귀의 명분과 타이밍이다. 20대 총선 전 당의 절박한 지원 요청을 물리쳤던 그가 더민주의 총선 승리로 원내 제1당에 오른 상황에서 어떤 명분으로 정계에 복귀하겠느냐는 것이다. 김홍걸 국민통합위원장이 "이미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새 판을 짜놓으셨는데 거기서 또 무슨 새 판을 짠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복귀 시 행선지가 어느 당일지, 아예 신당 창당으로 갈지 모호하다. 친정인 더민주는 손 전 고문을 자당에 묶어 두려 하고 외연 확장을 노리는 국민의당은 연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더민주 정장선 총무본부장은 26일 라디오에 출연, 손 전 고문을 향해 "어쨌든 지금은 저희 당 소속으로 되어 있지 않나. 그렇지만 새 판을 짠다고 언급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인지 많은 분이 궁금해하고 있다"며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모호하게 하는 것은 좋은 모습이 아니다"고 압박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전날 종편에 출연해 "정 의장이나 손 전 고문 같은 분이 중도세력을 엮어서 우리 국민의당으로 오면 훨씬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전 고문 측에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손학규계가 약진했지만, 더민주의 주류는 여전히 친노(친노무현)계이고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강력한 후보군이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손 전 고문이 정치를 다시 한다면 판 자체를 새롭게 짜고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많다. 정유선 기자 freesu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