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의 4·13총선 후보 선택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은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증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부산에서는 당 공천의 영향력이 큰 데도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채 일방적으로 진행돼 확인 안된 결과가 사실처럼 퍼지고 탈락자들은 불만을 쏟아내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경선을 흉내 낸 출처가 불분명한 여론조사도 난무해 유권자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신뢰도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물론 국민 참여 상향식 공천을 표방한 새누리당 경선이 오히려 퇴행적 선거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부산에선 부산진을 서·동 등 각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가 시행됐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새누리당의 경선지역 발표 순서와 달리 뒤죽박죽으로 시작되고, 조사 시점을 모르는 예비후보들은 연일 '긴급. 오늘 경선 여론조사. ○○○을 지지해 달라'고 쓴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제멋대로인 여론조사 시점을 두고 '음모론'까지 제기돼 지역 민심이 흉흉하다. 애초 지난 12일 경선 참여 예비후보들이 서약서를 쓴 서·동에선 나흘이 흘러 박근혜 대통령이 서구를 방문한 16일에야 여론조사가 시작됐다. 이에 서·동 일부 예비후보는 "친박(친박근혜)계 예비후보를 도우려고 일부러 여론조사 날짜를 조정한 게 아니냐"고 따졌다. 

여론조사 경선이 과거 '조직 선거'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거세다. 평소 지지자들을 '훈련'시킨 예비후보들은 여론조사를 앞두고 일제히 '대기 명령'을 내리기 일쑤다. 이런 와중에 일부 선거구에선 진짜 경선 직전에 집 전화로 유사한 형태의 여론조사가 이뤄져 혼선을 빚기도 했다.

결선 투표까지 이어진 곳에선 1차 여론조사 순위를 놓고 예비후보 간 공방이 벌어졌다. 결선에 오른 두 예비후보는 서로 본인이 1차에서 1위를 했다며 '대세론'을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한 예비후보가 지인들에게 자신이 1위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양측의 갈등이 폭발했다.

탈락한 예비후보들도 중앙당에 이의신청서를 넣는 등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들은 여론조사에서 몇 %의 지지를 얻었고 1위와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 청년·여성·신인 가점이 반영됐는지, 표본 추출은 적합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다. 경남 사천·남해·하동 경선에서 중복 조사 문제가 불거지는 등 이미 새누리당 여론조사가 신뢰를 잃었지만, 낙천 예비후보들은 기본적 사실관계조차 확인 못 하는 셈이다. 

이런데도 예비후보들은 4300여만 원의 고비용을 나눠내고, "무조건 결과에 승복한다"는 서약서를 써야만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결과에 승복하라'는 식이다.

경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한 정치 신인은 "이번에 첫 선거를 치르면서 국민이 왜 정치를 불신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권혁범 기자 pear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