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그분을 산만 좋아한 사람으로 알아요. 하지만 여느 정치지도자보다도 바다를 사랑하고, 이해했던 분입니다. 평생 해양수산분야 공무원으로 살아온 저는 분명히 장담할 수 있어요. 지난 22일 새벽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여기 그분이 친히 쓰신 '海洋强國(해양강국)·사진'이란 글귀 앞에서 한참이나 서 있었답니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이하 수과원)에서 36년째 근무 중인 이종배(57) 해양수산사무관은 24일 수과원 본관 2층 벽면에 걸린 '해양강국'이라는 붓글씨 액자를 보면서 '정치인 김영삼'이 아니라 '해양수산맨 김영삼'을 반추했다. 이 액자는 해양수산부 창립일인 1996년 8월 8일 김 전 대통령이 직접 써서 해수부에 전달한 친필 액자의 사본이다.

수과원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김 전 대통령을 바닷가에서 태어난 어업인의 아들로서 유독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 사람들을 이해했으며, 해양에서 국가 미래 성장의 원동력을 찾으려 했던 '바다 사나이'로 기억한다. 그 기억은 1994년 6월 17일 당시 수산진흥원이었던 이곳에서 열린 한 행사로부터 시작한다. 명칭부터 평범한 '제1회 풍요로운 바다 가꾸기'.

"갑자기 김 전 대통령을 태운 헬기가 수과원 주차장에 착륙한 거예요. 직접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날아오신 거지요. 이날 개원 이래 가장 많은 1200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어요. 대통령이 일일이 어민들과 악수하고 격려한 뒤 수과원 앞바다에서 치어 방류 행사에 참여했어요. 직접 집게를 들고 해동용궁사 앞까지 펼쳐진 해안에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했어요. 그 소탈한 모습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의 회고처럼, 이날 김 전 대통령은 치어 방류와 청소를 직접 한 후 수과원 연구실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수족관에 팔을 담그더니 양식 어류를 만졌어요. 연구자의 사기를 북돋우려고 일부러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으로 생각했지요."

이날 김 전 대통령은 후생관(수과원 직원식당)에서 어업인, 연구자와 점심을 먹으며 수산업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께서 어업인과 연구자들에게 '나 역시 거제 멸치잡이 어민의 아들이다. 누구보다 수산업의 중요성을 잘 안다. 바다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서 수과원을 방문한 것은 지금까지도 유일하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수과원은 김 전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하는 기념비석을 뜰에 세우기도 했다. 그는 '수산 진흥의 요람인 이곳에서 어민 공무원 등 1000여 명이 김영삼 대통령을 모시고 처음으로 바다를 청소하고 수산 자원의 조성을 위해 새끼 전복, 넙치 등 3만여 마리를 방류한 기념으로 이 비를 세우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이 비석을 여러 차례 어루만졌다.

실제 이 일을 계기로 수과원이 어업인에게 알려지고 젊은 연구자의 자부심도 고취될 수 있었다는 게 수과원 안팎의 평가다. 그리고 이후 정부의 바다 관련 정책이 급격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 2년 뒤인 1996년 '풍요로운 바다 가꾸기' 행사는 '바다의 날' 행사로 바뀌어 그해 5월 31일 첫 행사가 부산 영도에서 열렸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해수부를 만들겠다고 선포했고, 같은 해 8월 8일 출범시켰다. 그리고 초대 장관으로 자신의 측근이자 7선 의원이던 신상우 장관을 임명해 힘을 실었고, 직접 붓을 들어 힘찬 필치로 '海洋强國(해양강국)'을 썼다. 이 사무관은 또 김 전 대통령이 1996년 가덕도 일대에 '가덕신항만 건설'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지금 부산항의 위상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서도 김 전 대통령과 신 장관은 해수부 내에 국장급을 본부장으로 하는 신항만건설본부를 설치하고 국책사업으로 추진했다. 같은 해 10월 정부는 가덕신항만의 공식 명칭을 부산신항으로 바꿨다.

그는 "풍요로운 바다 가꾸기 행사와 김 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수과원 앞바다 방류사업의 매년 정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22일 새벽 자신의 SNS에 '바다의 사나이 김영삼'을 추억하는 글과 사진을 남겨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