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도시개발사업에 밀려 뒷전에 물러나 있던 벽·오지마을의 ‘유쾌한 반란’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을 소환하고, 자연과 환경을 창조적으로 재생해 힐링공간을 만들어 내고있다.
연극과 전시회 등 문화예술을 사업 아이디어로 접목하는 등 벽오지 마을의 차별화된 발전 전략이 눈길을 끈다. 마을 고유의 문화와 자산, 그리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명품 마을’ 만들기에 성공한 경남·울산지역 마을을 조명해본다.


- 서낙동강변 거주 65세대 120명
- 수십 년 방치된 쓰레기 싹 치워
- 2016년 ‘창조적 마을’ 선정 뒤
- 비닐하우스 공연 등 역발상 사업
- 입소문 타고 작년 1만 명 찾아
- 올핸 영화제·철인 3종 경기 계획

경남 김해시 대동면 수안마을은 서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다. 남해고속도로 동김해 IC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창 지나가다 보면 수안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마을 이정표를 쫓아가다 보면 점점 길이 산으로 뻗어 나간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의 긴 벽면에 장식된 기이한 형상물이 눈길을 끈다. 높이 5ｍ, 길이 30ｍ의 이 형상은 마을 상징물이다. 한 네덜란드 설치 예술가의 작품이다.

언덕을 오르자 크고 작은 집과 밭들이 산비탈에 오롯이 서 있다.마을 외양간에서 작품 전시회를 갖는 등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마을 축제도 벌써 3회째를 맞는다.

이처럼 특이한 축제 등이 알려지면서 수안마을에는 많은 방문객이 찾고있다. 도대체 무슨 비법이 있기에 탐방객들을 이 곳으로 불러들였을까.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마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지난해 6월 열린 김해 수안마을 수국축제장을 찾은 방문객들이 수국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즐거워 하고있다.

■평범함을 거부한 촌락

65세대 120명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수 년 전만 해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몇년사이 마을이 몰라보게 변했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주고 받는 것은 생명입니다’라는 제목의 마을 상징 조형물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설치 예술가 단 보틀렉이 지난해 제작한 것이다. 하얀 모습의 거인 3명이 숲의 정령처럼 꽃을 갖고 공기놀이를 하는 모습이다.

주민들의 꿈을 역동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풍경도 장관이었다. 멀리 서낙동강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바다로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자 머리가 맑아지고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껍질을 벗고 ‘나비’로 진화하다

부산에서 살다 15년 전 이곳으로 이주한 최병식(61)씨 가 5년 전 이장을 맡으면서 마을의 변화가 시작됐다.

마을은 수십 년 동안 곳곳에 쓰레기를 묻거나 불 태우느라 주변 환경이 말이 아니었다. 마을 어귀 곳곳에 쓰레기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최 이장은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마을 대청소를 시행하고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또 시청을 방문해 마을을 변화시키는데 예산이 필요하다며 시를 졸랐다. 시는 “정부에서 하는 창조적 마을 공모전이 있으니 함께 도전해 보자”고 역제안을 했다.

최 이장의 열정과 시의 지원이 어우러져 정부의 창조적 마을 공모 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이 마을은 2016년부터 2년간 5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됐다.

최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공모사업으로 가장 먼저 마을 한 가운데 방치된 생활 쓰레기장을 말끔히 치웠다. 마을 주민들은 한발 더 나가 이 쓰레기장에 예쁜 수국을 심어 명품 정원으로 만들었다. 자신감을 얻은 주민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의 마을 축제를 열면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좌충우돌 축제, 동심을 소환

	네덜란드 예술가 단 보틀렉이 설치한 마을 입구 조형물. 동화 속 숲 정령들이 꽃을 희롱하며 자연과 생명을 키우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6월 중 열리는 수국 축제는 지난해까지 두 번을 치렀다. 작은 축제지만 기상천외한 발상의 전환으로 명품 축제로 자라잡고 있다. 미국에서 요리를 배운 유학파 출신이 햄버거를 만들어 팔고, 부산의 한 대학에서 은퇴한 교수는 주민에게 자신의 집을 기꺼이 작품 전시회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소 외양간은 꽃꽂이 등 다양한 소재가 전시되는 갤러리로 변신했다. 주민들이 얼기설기 지은 비닐하우스 안은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깨끗하게 맑아진 마을 샛강과 대숲에서는 탐방객들이 발을 씻으며 그 옛날 잃어버렸던 동심에 푹 젖었다.

이 축제는 1회 때 5000명이 방문했으며, 지난해에는 배가 넘는 1만2000여 명이 찾아 주변 도로가 차량으로 마비가 될 정도였다.

마을 축제가 대박을 터뜨린데는 네덜란드 유학파로 사회적 디자인을 전공한 최 이장의 딸 새미(34)씨가 있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적은 비용으로 감동적인 축제를 만드는데 그가 큰 역할을 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수안마을의 변신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주민들의 노력이 숨어있다”고 칭찬했다.

■수국마을의 꿈은 현재 진행형

	지난해 6월 열린 수국축제 행사장의 한 장면. 공연단이 비닐하우스로 만든 무대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그간 마을의 변신과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수안에서’를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주민들의 애환이 절절이 녹아있어 독자들로부터 ‘살아있는 마을 동화’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1970년대 남해고속도로 건설 때 폭파작업으로 사라진 마애불을 복구해 마을에 모신 것도 최 이장 부임이후 마을 변신사업의 일환이다. 지금은 이 마애불을 주민들이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올해에는 부산의 영화문화협동조합과 협업을 통해 마을에서 독립 영화제를 열 계획이다. 4월 15일부터 9월까지인 행사기간에 야외에서 주민들을 위한 영화 상영도 하고 독립영화 공모전도 갖는다는 구상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서낙동강 둔치에 둘레길도 만들고 카악, 마라톤 등의 종목으로 철인 3종 경기를 유치해 지역을 전국적인 명소로 탈바꾼 시킨다는 야심찬 계획도 준비 중이다. 박동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