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인근에 설치된 일제 강제징용노동자상(국제신문 22일 자 9면 보도) 철거에 반대하며 시민단체가 사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영사관 앞으로 노동자상을 옮기려고 시도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혔다.

23일 오후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인근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적폐청산 부산운동본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옮기려 하면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23일 오후 7시 적폐청산 부산운동본부 등 시민단체원 400여 명이 동구 초량동 정발장군 동상 앞에 모였다. 동구는 15일간 기한을 두고 지난 8일 운동본부 측에 노동자상 자진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이들은 철거 명령 기한 마지막 날 모여 일본 영사관 앞 노동자상 설치를 막는 동구와 경찰을 규탄했다. 이어 오후 8시15분께 집회를 마친 뒤 노동자상이 임치 설치된 영사관 인근 인도로 이동해 동상을 옮기려 시도했다.

경찰이 의경 13개 중대 약 1000명을 투입해 노동자상 이동을 막으면서 지난 1일 불거진 충돌이 재현됐다. 운동본부는 동구의 철거명령에 따라 5명이 노동자상에 접근해 지게차를 동원하지 않고 노동자상을 옮기겠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외국 공관 인근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진으로 규정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산을 통보했다. 운동본부는 이날 노동자상 이동을 가로막은 경찰은 직권남용 등 책임을 물어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운동본부는 지난 21일 동구청을 항의 방문해 시민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당시 운동본부는 노동자상을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설치된 소녀상 옆으로 옮기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동구는 난색을 보였다. 동구 박보근 안전도시국장은 “노동자상 위치 이동을 지자체가 결정할 수 없다. 철거 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는 24일 운동본부 측에 행정대집행을 계고하고 오는 31일 집행할 예정이다.

한편 시민대회에 앞서 지난 18일 행정안전부와 운동본부 간 전화 통화가 있었지만 구체적 논의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운동본부 김병준 집행위원장은 “행정부 등 기관은 ‘영사관 앞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해결 방안이 나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행안부가 중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변변한 대화도 성사되지 못했다. 집행 예정일까지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또다시 충돌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