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공문을 부산시·부산시의회·동구청에 보냈다고 한다. 외교부는 특히 부산시에 보낸 공문에서 부산시의회의 소녀상 지원 조례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부산 소녀상 설치 이후 줄곧 일본에 끌려다니던 정부가 이젠 대놓고 지자체 등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재작년 졸속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이어 저자세로 일관하는 외교부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는 건 당연하다.

일본은 부산 소녀상 설치 이후 지난달 주한 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등 보복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소녀상 철거 때까지 (대사 등을) 안 보낸다"는 등 우리 정부를 향한 공세를 주도하고 있다. 부산 소녀상은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세운 것인데도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국내에서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여전하자 차기 정권에서 재협상할 여지를 아예 없애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되레 부산시 등에 소녀상을 옮기라는 공문을 보냈으니 우리 정부가 일본에 계속 끌려다닌다는 비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피해자 지원 등의 취지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부산시의회에서 추진하는 조례에 우려를 표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게다가 지난해 부산 소녀상 설치 당시 외교부는 "해당 지자체가 판단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다 돌연 딴소리를 하니 도대체 외교부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의 이런 태도는 장기 공석 상태인 주한 일본대사가 귀임할 수 있도록 명분을 주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은 강경 일변도인데 우리가 서둘러 양보하는 모양새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외교부는 부산 소녀상 이전 요구를 철회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소녀상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격화된 것은 우리 정부가 섣불리 위안부 문제에 합의해준 탓이 크다. 따라서 일본의 끝없는 트집과 공세를 막으려면 이면 합의 논란이 거센 양국 위안부 합의를 재고하는 것만이 근본적 해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