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찡하게 시린 차가운 새벽공기로 아침을 맞는다. 마당으로 걸음을 옮겨보면 마치 보석전시장에 들어선 듯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에 잠시 멈칫해진다. 바로 마당 가득 옥구슬을 뿌려놓은 듯한 서리 때문이다. 잔디와 나뭇가지에 뽀얗게 내려앉은 서리를 보며 이렇게 예쁠 수가 있나며 혼자서 감탄사를 내뱉는다. 분명 눈이 내려 만든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백발이 성성해지면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지금 나 자신이 꼭 그렇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머리가 희어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유년시절을 추억해본다. 단발머리와 교복, 이 나이쯤이면 어렴풋이 기억할 중고생 시절의 교복 입은 나를 추억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가슴이 뿌듯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오래전 여중생 시절, 국제신문을 배달한 적이 있다. 아르바이트라는 말조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온 동네를 그렇게 신문을 배달하며 국제신문은 내 유년시절의 한 조각으로 마음속에 새겨졌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인연 때문일까. 이 지면의 한 부분을 채우는 데 동참하겠노라고 선뜻 대답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을미년 새해를 신바람나게 맞이하며 문득 옛 어른들 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 지금에서야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일깨우는 뜻이리라. 나무에 매달아두고 멈추게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흘러간 시간은 영영 되돌릴 수 없다. 그렇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고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기회가 닿으면 베풀고 배려하며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크든, 작든,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이다. 많아서, 남아서 나누는 건 아니란 생각이다. 그저 주어진 것에서 조금씩이라도 떼내어 나누어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자연에 많은 관심이 간다. 거창하게 자연이라고 했지만, 산과 숲 계곡 들과 같은 어린 시절 주위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자연의 모습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숲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숲은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고 아토피 같은 육체적인 고통을 덜어주기도 하는 이로운 물질이 많이 뿜어져 나온다. 숲의 치료효과는 단순히 경험상 효과가 아닌 실증적 치료효과로써 의학계 연구가 이미 많이 보고되었으며, 최근에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숲은 단순히 경치가 좋고, 그 속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활성화해 건강을 증진시킨다.

최근 한 의학자는 숲 속에서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맨발 걷기, 명상, 나무 껴안기 등 활동을 함께한 결과 숲 체험 참가자 모두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했고, 명상할 때 증가하는 뇌파인 알파파가 증가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자율신경 기능이 안정되고, 혈압이 낮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정보화사회를 지나 지식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중 9명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누려온 자연과의 삶이 상당 부분 단절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연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 뿐 아니라 도시의 삶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늘어나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성인병 질환 증가추세도 팍팍한 삶의 또 다른 자화상이 아닐까.

이런 팍팍한 삶 속에서 숲은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현대인들에게 숲은 이를 다스리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독일은 슈바르츠발트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울창한 숲을 보유한 나라다. 숲이 가지는 치유효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문적 지식과 자격을 가진 숲 치료사가 환자에게 진단서를 발부하면 환자는 그에 맞춰 숲에서 일정기간 머물며, 정신건강을 회복한다고 한다. 이 같은 독일의 숲 치료에 대한 이해와 법적 뒷받침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체계적인 연구와 과학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산림치유 인프라를 구축해 국민들이 숲 치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삶의 질 향상과 더불어 숲의 현명한 활용을 위해서도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국토의 70%가량이 산지인 우리나라는 숲의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산림치유 잠재력 또한 대단히 크다고 생각된다. 요즘 정부정책의 화두로 창조경제와 복지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숲에 대한 투자와 활용이야말로, 창조경제와 궁극적인 의미의 복지로 큰 가치가 있지 않을까.

화인테크놀로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