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세기 지나도 숙제 못 풀어

- 새 나라의 어린이/김남중 지음
- 안재선 그림/푸른숲주니어/9800원

새 나라의 어린이는 광복 이후 격동의 대한민국을 그렸다. 미국을 위시한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이념으로 인한 혼란이 펄펄 끓던 '새 나라'의 모습을 담담하게 살핀다. 다양한 시대의 상징들, 예를 들어 레코드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가거라 삼팔선'이나 거적과 판자로 덕지덕지 지은 집들이 모여있는 해방촌 등이 그 시대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혼란의 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12세 노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동요이자, 책의 제목인 새 나라의 어린이에 담긴 의미다. 광복 이후 새 나라에서 살게 된 노마의 눈에 비치는 그 시대는 과연 새로운 시대였을까.

고아인 노마는 당숙의 가게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한다. 유일한 혈육인 형은 일제 강점기에 태국에 있는 포로수용소의 간수로 강제 징용됐다. 노마는 당숙의 구박을 받으며, 형 정식이가 돌아오는 날을 기다린다. 형이 멋진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구원해주기를 꿈꾼다. 그날이 오면 더는 춥지 않을 것이라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형은 해방 3년 만에 초라한 모습으로 노마 앞에 나타난다. 낡은 일본군 군복을 입고 가방 하나만을 든 채 당숙의 가게로 들어선 형은 자신을 포로수용소로 보내버린 친일파 야마다(노칠득)를 죽이려다 경찰에 끌려가 빨갱이로 낙인 찍힌다.

노마는 위기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외국인 여성 알리스에 부탁해 경찰에 잡힌 정식을 빼낸다.

풀려난 정식은 야마다를 처단하려는 생각을 접은 듯 일에 열중하지만, 어느 날 친일파를 처벌하자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결성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정식은 다시 경찰 간부로 활동 중인 야마다를 처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친일파를 잡아들이던 '반민특위'는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고, 정식은 다시 경찰에 끌려가서 모진 매질을 당한다. 빨갱이 낙인을 우려한 당숙은 노마를 쫓아내 버린다.

혹독한 매질에 바보가 되어버린 정식과 갈 곳 없는 노마 형제가 의지하는 곳은 해방촌 아래 국밥집이다. 정식의 옛 여자친구 순희가 일하던 곳이다. 순희는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낳았다. 순희는 자신과 함께하려는 정식을 거부해 도망쳤다가 돌아온다. 주인공 형제들에게는 아픔이 서린 곳이지만 의지할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대한민국의 어두운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어른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를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꾸몄다. 지금도 연일 매스미디어를 장식하는 수많은 논쟁과 갈등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

옳고 그름에 관한 가치를 어린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만들어내는 사건을 통해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힘을 길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