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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민주화 성지’라는 자부심 /최현진

유신독재 끝낸 부마항쟁, 정작 부산시민은 잘 몰라…피해자는 트라우마 여전

유공자예우법 국회 낮잠…그들 없으면 우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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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성지 부산에서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부산지역 교육계 한 인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최근 민주화 교육의 일환으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방문했다고 한다. 묘지 관계자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부산에서 왔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광주 시민은 부산을 왜 민주화의 성지라고 말할까. 이는 다름 아닌 부마민주항쟁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부산시민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지역의 한 교사가 10대 학생들에게 부마항쟁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조선시대 부마(왕의 사위)가 일으킨 난이 아니냐” “버마(옛 미얀마)에서 일어난 항쟁이다” 등 엉뚱한 답을 들었다. 답답하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부산 어른들의 잘못이 크다. 학생들에게 자랑스런 부마항쟁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 데 그러하지 못했다.

부마민주항쟁이 어떤 항쟁인가.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독재를 끝장낸 역사적인 민주화 운동이다. 1979년 10월 부산지역 대학에 시위가 없어 ‘유신대학’이라는 오명을 받았다. 서울지역 모 여대생이 부산지역 한 대학에 가위를 보냈다는 웃픈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했다. 이진걸 등 부산대생 일부가 15일 유신독재에 항거해 민주선언문과 민주투쟁선언문을 만들어 뿌렸고 16일에는 정광민 등이 주축이 돼 부산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시위는 부산 시내로 퍼졌고 다른 대학생과 시민이 동참하면서 규모가 더 커졌다. 18일에는 마산에서도 항쟁이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은 이에 부담을 느껴 부산과 마산에 각각 계엄령과 위수령을 발동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관련자들을 불법으로 체포 구금 고문했다.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부산에 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뒤 정권 핵심부에서 갈등이 커지면서 같은 달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총으로 시해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은 한국 4대 민주운동사(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에 포함된다.

하지만 부마민주항쟁은 그동안 광주민주화운동 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저평가된 게 사실이다. 40년이 되도록 항쟁의 실상과 성격을 공식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한 적이 없었다. 2013년 6월 4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제정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다. 대법원도 2018년 11월 29일 박찬긍 계엄사령관이 발동한 계엄포고를 위헌무효로 판시함으로써 당시 벌인 정권의 진압과 체포 등이 위법한 것임을 인정했다. 항쟁은 관련자와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2019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이제는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도 설립돼 항쟁을 기억하는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고통 속에 사는 피해자들이 있다.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졌지만 충분하지 못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뭔가를 기록하지 못한다든지, 낯선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머리에 아직 유리조각이 남아 있는 이도 있다. 낙인이 찍혀 평생 취업하지 못하고 무직자로 살아온 세상은 누가 어떻게 보상하나. 국가는 이들을 정성스럽게 예를 갖춰 보듬어야 한다. 지난해 6월 전재수 의원 등 10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부마민주항쟁 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안’은 1년이 넘도록 상임위 심사 중이다.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난달 27일 부경대 하계 학위수여식에서 부마민주항쟁의 전초 사건으로 평가받는 ‘9·17 못골시위’의 주역인 김맹규(63) 씨가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그동안 부마항쟁 관련자 중에서 명예회복을 신청한 사례는 부당 해직자가 대부분이었다. 김 씨처럼 명예졸업장을 신청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부마항쟁진상규명위가 지난 6월 부경대 측에 학사징계 기록 말소와 명예졸업장 수여를 권고했고 학교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오는 12월이면 진상조사보고서가 정식으로 관보에 게재된다.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진상이 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로 세상에 나오게 되는 셈이다. 위원회는 그동안 30여 개 기관을 대상으로 총 120여 종, 4만여 쪽 분량의 자료를 수집했다. 위원회는 또 항쟁 참여자, 진압 관련자, 참고인 등 총 112명을 인터뷰 조사했고, 항쟁 관련자 247명을 면담 조사했다. 앞서 부산시교육청은 ‘부마길’이 포함된 ‘부산민주길을 걷다’라는 부산민주화운동 중고등학생용 워크북을 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희생자와 피해자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려 그들에게 보상과 위안을 주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있겠는가. 10월이 다가오는 날에 드는 생각이다.

편집국 부국장 namu@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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