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11월 남해 금산에서 열린 쟈일크럽 창립기념 산행에서 회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 두 번째가 최병선 선생이다.

- 암벽 등 다양한 활동 지향
- 60년대 20대 '쟈일크럽' 창립
- 필수장비 국내 개발·보급
- 학생 등산 활성화에도 앞장
- 지역등산계 질적변화 이끌어

부산 등산계가 태동기에서 성장기로 도약할 무렵인 1950년대 말 한국산악회 경남지부는 포괄적인 학술탐사 위주의 등산 활동을 꾸준히 전개했다. 또 부산청년등산구락부와 대륙산악회는 새로운 등산문화 보급에 역점을 두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쟈일크럽이 기술등반을 앞세워 새로운 등산 활동을 전개했다.

록클라이밍(Rock Climbing)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시절, 이들의 창립 취지는 획기적이었다. '도보산행을 지양하고 기술등반(암벽·동계적설·빙벽등반)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그 목표도 '기술등반 활동을 통한 산악회의 체계화와 회원 상호 간의 유대 강화, 유능한 후진 양성'에 주안점을 둔다고 선언했다. 당시 기술등반의 기치를 높이 든 주역이 최병선(1936~1997) 선생이다. 선생은 체계적인 기술등반을 부산에서 처음으로 도입했고, 이를 통해 학생 등산 활동의 활성화와 등산 대중화에 앞장섰다.

1936년 부산 초량에서 태어난 선생은 경복고와 연세대(영어영문학과) 산악부에서 활동하며 서울 근교 암벽을 오르내린 등반가였다. 1958년 부산으로 직장을 옮기고 이듬해 부산청년등산구락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단순 워킹산행에서 탈피해 다양한 등반을 추구하려던 계획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등산구락부를 나왔다. 선생은 당시 기술등반을 갈구하던 구자윤 김부조 정승종 박창수 황천성 이만균 곽삼덕 김영식 윤태호 안영철 허경욱 방복주 등 20대 젊은이 12명과 함께 1960년 쟈일크럽을 창립했다.

초대 부장(회장)으로 추대된 선생은 먼저 산악회 발족을 미국·영국·일본산악회에 알리는 일로 시작했다. 한편 서울에서 익힌 암벽 등반기술과 일본 산악잡지 등을 통해 습득한 새로운 이론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기술등반을 주도해 나갔다. 산악회 창립 이전부터 개척해 온 금정산 상계봉 암벽코스를 1961년에 완전히 마무리하고, 병풍암 미륵암 등에서 훈련을 쌓으며 루트를 개척해 부산 등산계의 관심을 끌었다.

선생은 등반장비의 개발·보급에도 앞장섰다. 기술등반의 필수 장비인 크램폰 피켈 하켄 등을 일본에서 견본으로 산 뒤 부산공대 기계과를 졸업한 이계환 회원에게 제작을 맡겨 철공소에서 특수 재질로 만들었다. 이 장비를 실비로 보급하자 회원은 물론 다른 산악회에서도 구매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특히 기술등반을 추구하던 많은 등반가에게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국내 제작이 불가능한 장비는 (주)럭키에 근무하던 구자윤 회원을 통해 일본에서 들여왔다. 재미난 일화는 당시 '항고'라 불리는 군용반합에 나무로 불을 지펴 취사했는데, 쟈일크럽은 외제 버너를 사용해 부러움을 샀고 결국 '귀족 산악회'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선생은 기술등반 위주의 산행에서 쌓은 실적을 언론매체와 사진·장비전시회 등을 통해 부산시민에게 지속해서 선보였다. 1961년 미화당백화점에서 열린 첫 전시회 때는 등산에 관심 있는 학생과 일반 시민 2000여 명이 참관하는 대성황을 이뤘다. 이런 노력은 시민들의 산악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부산 등산계의 미래를 밝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선생은 학생 산악운동에도 정열을 쏟았다. 창립 이듬해 산악회 내에 학생연맹체를 둬 여름방학 때 한라산 지리산 등에서 훈련등반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광해수욕장에 임해트레이닝캠프를 열고 등산이론과 함께 달음산에서 암벽등반 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줬다. 이때 참가한 경남고·경남상고·동래고·부산고·부산공고 등 고교 산악반 학생들은 후일 부산 등산계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

선생은 1963년 부산서는 처음으로 등산대회를 추진하면서 기획과 진행 일체를 맡아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한국산악회 경남지부, 대륙산악회, 쟈일크럽이 공동 주관해 금정산에서 이틀간 열린 부산등산대회에는 고등·대학부 20개 팀이 참가해 성황리에 치렀다. 이 대회는 부산 등산계의 초기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고, 1966년 부산산악연맹이 주최한 '제1회 부산학생등산대회'로 발전했다.

선생은 부산 최초로 덕유산 적설기 극지법 등반을 시도하기도 했다. 1963년 1월 부산군수기지사령부로부터 군용트럭과 수송병, 무전기 등을 지원받아 등반에 나섰다. 예년에 비해 엄청난 폭설로 능선에 1m 이상의 눈이 쌓였고, 살을 에는 혹한에 무전기마저 작동되지 않는 등 극한 상황으로 동엽령까지 진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이 등반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실이 부산 등산계에 전파되면서 부산 산악인의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됐다.

오늘날 부산 산악인들이 전 세계 고봉의 암벽과 설벽에 발자취를 남기면서 세계적인 등반가들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저력은 선생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 등산계의 기술등반 개척자였던 선생은 1997년 62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무엇보다 평생 사랑했던 상계봉의 수직 벽에 그 이름을 새겨 오늘까지 후배들에게 '자일의 정'을 전하고 있다.

부산산악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