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과학관 건립, 어른 싸움돼서야 /손동운

영남 내륙· 동남권 구분을

대구시 과잉반응 '유감'

경북 문경의 조령(548m)은 산 높이보다 굽이굽이 흘러내리는 계곡 때문에 예전에는 넘어가는데 하루가 족히 걸렸다고 한다. 같은 소백산맥 줄기인 경북 영주의 죽령(689m)은 대재라고 불릴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영남(嶺南)은 조령과 죽령의 남쪽을 일컫지만 경상남·북도 전체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호남(湖南)은 전북 김제 벽골제 또는 금호강의 남쪽으로 전라도 지역을 지칭한다.

이처럼 '영·호남'에는 지리적 의미 외에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나타내는 '정서적' 의미가 녹아있다. 그러나 19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지역 분파적'인 목적으로 이용됐다. 한번 입에 익어서인지 군사정권 이후에도 선거 때만 되면 '영·호남'이 튀어나오고 있다.

'정서적' '정치적'으로 영남은 경남·북을 아우르는 말이지만 '실물'시장에서는 맞지가 않다. 영남은 강원도 태백시 아래에서부터 부산 영도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다. 호남도 전남·북이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지만 이만하진 않다. 영남의 생활권역과 산업·경제적 기반은 대구·구미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내륙지방과 바다를 끼고 있는 동남임해공업지역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인구는 부산·울산·경남이 어림잡아 800만 명, 대구·경북이 510만 명으로, 영남 전체는 1300만 명에 이른다. 호남은 500만 명이다. 지난해 지역 총생산액은 부산·울산·경남이 137조 원, 대구·경북 82조 원, 광주 전남·북 79조 원으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국가 정책은 언제나 영·호남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 실물 지표와는 관계없이 정치적 형평성과 균형발전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최근 부산에서 '아이들에게 과학관을!'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립과학관 건립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부산시민의 3분의 1에 이르는 114만여 명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울산과 경남지역 주민도 많이 참여했다. 과학기술부가 '영·호남에 국립과학관 1개씩을 건립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주역이자 800만 주민과 청소년이 모여 사는 동남임해공업지역, 즉 부산·울산·경남은 기획예산처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에서조차 제외됐기 때문이다. 대구와 광주는 포함됐다.

과학관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 성원이 너무나 컸기에 과학기술부는 과학관 건립 확대를 위해 지난 8일 기획예산처에 동남권 국립과학관의 예타를 재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기획예산처는 지난 3월 테마형 박물관인 '부산해양박물관'이 예타 대상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동남권 과학관을 제외시켰기에 이는 새로운 발걸음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20일 대구시가 느닷없이 과잉반응을 보였다. 과학기술부가 '대구와 광주의 예타는 올해 사업이어서 내년도에 진행될 동남권 과학관 예타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도 부산을 지칭해 '영·호남 과학관 대상지인 광주와 협조하여 타당성 조사가 올 11월 중 마무리 되도록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대구국립과학관을 대구·경북 통합과제로 선정하고 대구·경북 41만 초등학생들에
게 홍보 리플릿을 나눠주겠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지역 언론에서는 동남권 과학관 건립을 적극 추진하는 부산지역 국회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대구·경북 의원들의 대구국립과학관 당위성 코멘트를 덧붙여 보도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과학관 시설은 서로 빼앗아야 하는 '유치'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세워져야 할 '만시지탄'의 청소년 공간이다. 대상 지역도 권역별로 더 확대돼야 마땅하다. 과학관 시설은 전국 56개 가운데 대전을 포함한 수도권에 66.4%가 편중되어 있다. 이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가 주는 것을 서로 따먹으려는 '유치'가 아니라 그동안 부족했던 지방 과학기술 인프라의 '파이'를 키워 나가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

아이들을 위한 과학관 건립이 자칫 어른들의 '유치전'으로 비화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