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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서 방문객들이 전시된 화폐를 살펴보고 있다. |
돈은 시대의 얼굴이다. 돈을 보면 그 시대의 사회 문화 경제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은행의 ‘세계 주요국 화폐’ 자료에 따르면 46개국 은행권 도안의 앞면 소재를 파악한 결과 인물초상이 83.2%로 압도적이었고 조각상 건축물 동식물 순이었다. 인물초상 중에는 정치인 66.9%, 문화예술인 30.7%, 일반대중 2.4%로 나타났다.
반면 뒷면의 도안 소재는 건축물(23.5%) 문화유적(16.3%) 인물(15.3%) 동식물(15.3%) 자연경관(7.2%) 순이었다.
인물초상의 경우 대체적으로 건국 역사가 짧은 나라나 후진국으로 갈수록 정치인, 특히 현직 국가원수가 많이 등장한다. 이런 화폐들은 정권이 바뀌면 휴지통에 처박히기 일쑤다.
반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비정치인 특히 문화예술인이 등장하는 빈도가 높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93년부터 25디나르 등 모든 이라크화폐에 자기 초상화를 넣었다. ‘사담 디나르’로 불린 이 화폐들은 지난해말 후세인 체포 이후 신권 화폐가 발행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나라도 해방이후 발행된 지폐와 주화 초상화로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만 들어갔다. 이 가운데 1956년 나온 500환짜리 지폐에는 이 대통령 초상이 중앙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아랫사람들이 “지폐를 반으로 접으면 대통령 얼굴이 접힌다”며 과잉충성, 2년후 대통령 얼굴이 오른쪽으로 밀려난 새로운 500환짜리를 발행했다. 이 대통령의 초상이 든 화폐는 제2공화국 등장 이후 모두 사라졌다.
유로화 통일 이전 프랑스의 프랑화는 종류별로 모으면 문화예술사전이 된다. 작곡가 베를리오즈(10프랑) 후기 인상파 화가 폴 세잔(20프랑) 인상파 음악의 시조 드뷔시(100프랑)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와 건축가 에펠(200프랑) 철학자 파스칼(500프랑) 등이 모델로 등장한다. 50프랑 지폐에는 생텍쥐페리의 초상과 함께 ‘어린 왕자’의 앙증맞은 그림이 들어있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 과학자 패러데이(영국) 북극탐험가 난센(노르웨이) 작곡가 모차르트, 심리학자 프로이트, 경제학자 뵘바베르크 (오스트리아) 화가 라파엘로, 작곡가 벨리니, 무선전신 발명가 마르코니(이탈리아) 등도 화폐의 등장인물이었다. 과학자 퀴리부인(프랑스) 교육자 몬테소리(이탈리아) 과학자이자 화가인 메리안(독일) 여권운동가 로자 메이레더(오스트리아) 등은 여성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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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3년 미국의 학자가 발견
한 돌돈. 서태평양의 야프
섬 주민들은 그때까지 릫페
이릮라는 돌을 돈으로 사용
하고 있었다. 돌돈은 직경
50㎝부터 4m짜리까지 있다. |
이웃 일본도 비슷하다.
1만엔권엔 게이오대학 창설자이자 일본 탈아론(脫亞論)의 주창자인 후쿠자와 유키치, 5000엔권엔 교육자이자 국제연맹 사무차장을 지낸 니토베 이나조, 1000엔권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담고 있다. 일본정부가 오는 7월부터 유통하는 1000엔과 5000엔 신권의 주인공도 각각 세계적 병리학자 노구치 히데요와 24세로 요절한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이다.
참고로 일본 재무성의 지폐 주인공 선정 원칙은 △국제성 있는 인물 △사진·초상화로 고증 가능한 인물 △문화예술가 등이다.
우리나라는 화폐의 등장인물(세종대왕 이이 이황 이순신)이 공교롭게도 조선시대 이씨 성을 가진 남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 인물, 여성 등 등장인물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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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발행된 500환
권(위 사진)은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이 접힌
다는 이유로 2년만에
초상이 오른쪽으로 배
치된 새디자인으로 교
체됐다. |
북한 화폐는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려는 정책적 목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김일성의 초상화와 생가, 김일성 주검이 안치된 금수산 궁전 등이 최고액권인 500원권과 100원권에 새겨져 있다. 천리마동상 노동자상 인민대학습당 각계각층인물상 꽃파는처녀 등이 주요 모델이다. 1원권에는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문구를 넣었다. 부럼(부러움)없다는 북한에서 오늘도 수많은 인민들이 식량을 찾아 중국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정책적 목적의 화폐도안이 있었다. 1962년 발행된 100환짜리 지폐에는 한복차림의 젊은 엄마가 색동옷을 입은 아들과 함께 저금통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5·16군사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계획 자금 조달을 위해 국민의 저축심을 앙양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72년부터 나온 50원 동전에는 벼 이삭이 그려져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농산물 증산 정책에 부응해 쌀 풍년과 국내 자급 희망을 담은 것이다.
화폐의 액면가를 보면 그 사회의 인플레이션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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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한은이 발행한
100환권 지폐. 자모상
이 그려져 있으며 발행
된 지 25일 만에 화폐
개혁으로 사라졌다. |
1924년 독일에서는 100조(兆)마르크짜리 지폐가 발행됐다. 세계 역사상 최고액 화폐다. 당시 독일은 1차세계대전 패전으로 승전국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마르크화를 남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빵 1kg의 가격이 무려5200억마르크였다. 지폐는 종이보다 가치가 떨어져 도배지나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했다. 시장에 간 할머니가 돈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한눈을 파는 사이 도둑이 돈다발은 그냥 두고 낡은 바구니만 훔쳐갔다는 실화도 있다.
1970~80년대 중남미에서는 물가가 연간 1000% 이상 오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화폐단위가 해마다 높아져갔다. 볼리비아의 경우 최고액면가가 천만단위를 넘어서자 1987년 화폐가치를 100만분의 1로 줄이는 디노미네이션을 실시했다.
터키에서는 지난 2001년 2000만리라(우리돈 1만7000원)짜리 지폐가 발행됐다.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97년 500만리라, 99년 1000만리라짜리를 찍어내고도 모자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들 국가 정도는 아니지만 화폐가치 하락이 심한 편이다. 현행 유통 주화 5종 가운데 3종(1원 5원 10원)은 사실상 쓸데가 없다. 1원, 5원짜리는 1992년부터 발행이 중단됐다. 10원짜리는 공중전화(70원) 우표(170원) 정도가 유일한 사용처인데 100원 동전을 사용해 30원을 손해보거나 휴대전화의 사용으로 그마저도 설곳이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화폐 선진화방안 논의와 관련, 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원’의 하위단위인 ‘전(錢)’을 다시 사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1원 5원짜리는 물론 1962년 화폐개혁과 함께 발행됐으나 물가가 오르면서 쓸모가 없어져 1980년 12월 발행이 중단됐던 10전과 50전권도 재사용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일본은 1엔 5엔짜리가 아직도 제 대접을 받고 있다.
슈퍼마켓 약국 책방 등 어느 곳에서나 1엔짜리가 필요하고 쓰임이 있다. 물건의 가격이 5엔이나 10엔단위로 끝나고, 부가세도 우리처럼 10%가 아니라 5%가 붙기 때문에 1엔 5엔짜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전 지갑을 따로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돈 가치가 그만큼 귀중하게 느껴진다.
/ 글 = 김찬석기자 chansk@kookje.co.kr
구시영기자 ksyoung@kookje.co.kr
/ 사진 = 이용우기자 yw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