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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꾼들 사이에서 '지리산 도인'으로 불리는 산악인 성락건 씨는 "아무도 모르게 산으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죽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성 씨가 하동의 청학동에서 곱게 물든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다. |
직접 차린 밥상에는 밥 한공기에 냄비째 떠먹을 된장국, 간장종지와 김만 달랑 놓였다. 냉골 주방 바닥에 쪼그려 혼자 아침을 뜨는 모습이 왠지 측은하다. 구부정한 몸, 다듬지 않은 수염, 듬성듬성한 머리숱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이게 했다. 그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리산 도인으로 불리며 지리의 험난한 능선과 계곡을 넘나들던 전설적인 산꾼이었다는 사실이 좀체 믿기지 않았다. 산에 미쳐 지리산만 1000번은 올랐다는 풍운의 산악인은 간데없고 그저 삶이 신산한 시골 촌로가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깊게 팬 눈매에는 그러나 여전히 산 그림자가 어렸고 느리지만 부드러운 음성은 삶을 반추하는 듯한 그윽한 분위기가 읽힌다. 지리산 도인, 성락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 한잔하러 오시죠."
취재가 미진해 안부를 핑계 삼아 전화를 넣었더니 수화기 너머로 대뜸 이런 말이 들려왔다. 그의 첫마디에 적잖게 놀랐다. 기자가 다시 찾아갈 거란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어찌 됐건 차 한잔 마시러 사흘 전에 오갔던 길을 거슬러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 닿은 게 지난 10일 이른 아침이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 바람이 겨울 삭풍을 흉내 내고 있다.
산청군과 경계인 하동의 청학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기슭 도로변에 다오실(茶悟室)이란 간판을 내건 찻집 하나가 있다. 눈만 뜨면 지리산을 찾던 그가 아예 지리산을 병풍처럼 끼며 살고 싶어 10년 전에 터를 잡은 곳이다. 차 마시며 도를 깨치고 싶어 이름 붙였다. 다오실 황토벽 처마 아래에 매달린 연분홍 곶감 위로 새벽 서리가 앉았다.
그가 아침을 먹는 동안 찬찬히 집구경을 다시 했다. 세간붙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린 거실. 지리산에서 자란 나무로 깎아 만들었다는 차숟가락과 찻잔이 벽을 가득 메웠다. 천장 들보에는 '그대가 가난한 것은 오두막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궁전을 원했기 때문이다'란 의미 심장한 글귀가 쓰여 있다. 아이젠, 피켈 같은 고산 등반장비들을 전리품처럼 벽에 걸어 놓았다.
지리산을 좀 탔다는 산꾼들 사이에서 그는 '지리산의 달인'으로 통하는 전문 산악인이었다. 지리산 정상만 1000번 넘게 밟았고 스스로 '지리산에 미친 사람'이라는 호(號)도 지어 붙였다. 주위 냉담에도 불구 이 엉뚱한 호를 딴 출판사를 직접 차려 지리산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올해 64세인 그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덕유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1965년에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군제대 후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공무원 시험을 쳤다. 이후 서울서 10년간 공무원으로 지냈다. 서울 생활을 할 때는 접근이 용이한 설악산을 늘상 탔다.
남녘 지리산을 처음 밟은 건 스물여덟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보는 이를 압도하는 설악과는 또 다른 지리산의 푸근함과 신비감에 매료됐다. 이후 보장된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지리산과 가까운 진주로 내려와 등산 장비점을 냈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이 풀리면서 감질나게 오르던 지리산 산행의 물꼬가 트였다.
지리산 외에도 1985년 악명 높기로 유명한 히말라야 가우리상카르(7134m)에 세계 최초로 동계 원정을 성공하는 등 15년간 히말라야 가이드 생활을 했다. "성락건이 가는 곳은 여행사는 못 가는 곳"이란 입소문이 날 정도로 오지와 설산 산악인으로도 명성을 알렸다.
평생 지리산만 무질렀던 그가 세상 물정에는 까막눈일 수밖에 없었다. 등산 장비점이나 네팔 음식점을 비롯해 손대는 장사마다 죄다 말아먹었다. "설악이 오르고 싶은 산이라면 지리는 살고 싶은 산"이란 그의 표현대로 모든 것을 접고 10년 전 이곳에 다오실을 짓고 지리산 주민이 됐다.
찻집과 민박을 치며 지리산에 묻혀 지내던 그에게 지난해 여름 예기치 않은 불행이 엄습했다. 후배 산꾼과 가까운 계곡 산행을 하던 도중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졌다. 눈을 뜨니 방 안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계곡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자에게 최대한 말을 아꼈지만) 일종의 뇌졸중이었다.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치료를 받아 상태는 많이 나아졌지만 더 이상 산을 타기는 어렵게 됐다. '지리산에 미친 사람'에게 산을 오를 수 없다는 건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아침밥을 다 먹은 그가 거실로 나와 차를 끓였다. 보일러를 켜지 않아 냉랭한 거실 공기 속으로 은은한 다향이 담배연기처럼 번졌다.
"한때 내가 진주 꽁지머리로 유명했어." 치료를 위해 깎은 긴 꽁지머리가 아쉬운 듯 찾잔을 따르던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가뜩이나 손님이 없어 적자만 보던 다오실은 그날 사고를 계기로 문을 닫았다. 생활고를 못 이긴 9살 어린 아내는 대구로 돈벌이를 나갔고 1년째 혼자 문 닫은 찻집을 지키고 있다. "남자는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데 여자는 그렇지 못 한가봐, 거참." '그걸 이제 아셨느냐'는 기자의 핀잔에 싱긋이 웃고 만다.
'지리산에 미친 사람' 외에 '산오자(山悟者·산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 '허풍도사' 등 스스로 붙인 호만 대여섯 개쯤 된다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그이지만 지리산과 관련해서는 아직 그를 따라올 산꾼은 없다.
그의 지리산 산행은 독특했다. 잘 닦여진 종주길이나 능선을 타기 보단 탐사와 모험을 감행하는 '신비주의 산행'을 일관했다. 12일간 천왕봉~반야봉~노고단까지 이어진 직선산행을 수차례 감행한 적도 있었다. '직선산행'이란 지도에 목적지들을 일직선을 그은 다음, 나침반만 들고 길을 따라 산을 오르내리는 것을 말한다. 글자 그대로 길이 있을 리 만무한 직선산행이다.
이 밖에 호랑이나 곰을 찾아가는 '야생동물 산행' '빨치산 유품수거 산행' 음식을 산에서 직접 구해 먹는 '원시 산행' 태풍 불고 천둥 번개 치는 날 능선을 타는 '미친놈 산행' 등을 권장한다. '왜 굳이 지리산을 그렇게 타야 하는가'를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히말라야는 그럼, 왜 오르려 하는가"란 도인 같은 선문답이 돌아왔다.
산꼭대기만 기를 쓰며 오르는 등정이 아니라 산 타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뜻. 지리산을 놀이와 모험이 가득한 놀이터로 만들고 싶은 게 그의 꿈이었다.
근래 붐이 일어난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그는 지리산 둘레를 직접 걸어보고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관광책자에 나오는 지리산 10경이 아닌 반야봉의 구상나무 군락이나 왕등의 늪지대, 한신계곡의 자작나무숲 같은 그만의 '새로운 지리 10경'도 정했다. 이런 지리산의 특이한 정보와 직접 겪은 기괴한 이야기를 모아 지난해 '연인과 숨어 살고픈 지리산(고산자의 후예들 출간·1만5000원)이란 책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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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학동 서당의 훈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지리산에서 경험한 가장 신비한 경험담을 들려달라는 주문에 "산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느냐"며 웃으며 되물었다.
80년대 중반 직선산행을 하던 중 벽소령을 지나 빗점골 부근에서 비박을 할 때였다. 새벽녘 바람 한점 없는데 온 산이 울부짖더란다. 덜덜 떨며 칠흑의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넋을 잃었다. 일대 아름드리 나무들이 모두 부러지거나 넘어져 있었던 것. 안개가 나무에 차곡차곡 얼어붙으면서 두께 5㎝ 이상의 수빙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얼음 무게를 버티지 못해 일대 나무들이 밤새 부러지고 갈라진 소리였다. 바닷속 거대한 산호군락을 헤치고 걷는 듯한 느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평생 지리산을 돌아다니면서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가 있다. 1976년 홀연히 지리산으로 사라진 우천 허만수 선생의 흔적을 그는 20년째 찾아다녔다. 우천은 일제강점기에 지리산으로 들어온 전설적인 산악인이다. '환갑이 되면 지리산으로 사라지겠다'는 평소 유언대로 61세 나이에 아무 말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영면한 우천이 지리산의 신령이 되었다고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는 우천이 택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역시 71세가 되는 해 지리산으로 영원히 사라질 생각을 품고 있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때, 우천 선생처럼 지리산으로 홀로 걸어가 조용히 사라지고 싶어. 그게 내가 영원히 지리산이 되는 길이거든…."
긴 이야기 끝에 취재수첩을 닫았다. 찻잔에 담긴 마지막 찻물이 식은 지 한참 지났다.
"덕산에 볼 일이 있으니 차를 좀 태워줄 수 있느냐"는 그의 부탁을 듣고 덕산 쪽으로 차를 몰았다. 뒷자리에 앉은 그가 조용히 말했다. "산 타는 걸 이젠 못해도 산을 떠나 살지는 못할 것 같아. 어디로 가겠어, 평생 산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산마루에 걸린 늦가을 정취가 어느새 단풍보다는 낙엽에 가깝다. 계절이 윤회의 끝이자 시작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