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화·드로잉·에칭 등 45점, 25일까지 롯데갤러리 부산본점

에바 알머슨의 '꽃'. 롯데갤러리 부산본점 제공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는 말이 있다. 차 마시고 밥을 먹는 것처럼 흔한 일을 일컫는다. 이렇듯 소소한 일상을 작품으로 풀어낸 작가가 있다. 화폭 속 주인공은 둥그스름한 얼굴의, 볼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친숙한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를 닮았다. 산책을 하거나 목욕을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삶의 풍경이 화폭에 담겨 있다. 여름이면 비키니 차림으로 해변에 누워 선탠을 즐기고 카펫 위에 누워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도 한다. 맨손 체조를 하거나 꽃밭에 물을 주는 등 일상 속 작은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이러한 사소한 일상을 누릴 때가 아닐까 싶다. 신혼 시절 신랑과 함께 청소와 식사 준비를 할 때, 매일 밤잠도 못 자게 칭얼거리던 갓난아이가 '까르르'하고 웃어줄 때, 힘들게 산 정상에 올라 물 한 잔 마실 때 등.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일상이, 사실은 절대 놓칠 수 없는 '절대 행복'임을 곧잘 잊고 산다. 행복을 뽐내는 작품 속 주인공들은 때론 능글맞게, 때로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우리가 스쳐 보내기 쉬운 사소한 일상을 하나의 드라마로 만들어 준다.

일상에서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지리멸렬해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롯데갤러리 부산본점(부산진구 부전동)에서 소개되는 에바 알머슨 특별전을 찾아보자. 작가는 1969년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수학한 이후 줄곧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화가이다. 스페인의 코카콜라 광고 애니메이션에 작품을 등장시키면서 대중과의 폭넓은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유화와 드로잉, 에칭 등 45점의 작품들로 모두 '생활의 발견'을 테마로 한다.

작품 속에는 불타는 정열이나 극적인 일탈은 없다. 대신 신발을 신거나 모자를 써보는 따위의 사소하며 반복적인 행위까지 행복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아주 오래된 연인이나 금실 좋은 부부에게서 묻어날 수 있는 정감 어린,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 사랑이 캔버스 안에서 붓과 물감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미술 평론가 김의경 씨는 "'파랑새'의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텍스트적 메시지가 더 이상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이라면 알머슨이 전하는 시각적 메시지를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인물은 표정과 몸짓으로 우리 가까이의 행복을 이야기 한다"고 말한다.

행복 이야기를 빛내주는 것은 알머슨 특유의 인물 표현과 필치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은 마치 동일 인물처럼 정형화됐다. 어린 아이가 서툴게 그린 듯 일자 몸에 긴 팔다리, 세밀한 묘사 없이 점찍듯 눈 코 입을 그린 화법에서 대담한 필획과 경쾌함을 느낄 수 있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태양을 머금은 '스페인 발 행복 전보'에 잠깐 쉬었다 가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25일까지. (051)810-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