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장산~구곡산~출발지
- 14㎞·5시간30분 소요 코스

- 기장·해운대·수영·동래 등 조망
- 장산정상 서면 부산이 파노라마

- 가을색 머금은 억새밭 황홀
- 누군가 쌓아놓은 돌탑 눈길
- 안적사 고요함 산행의 운치

만추의 스산함 때문인가.

이번 산행을 떠나던 날 아침에 즐겨 듣는 라디오 클래식 채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일제의 무단통치를 피해 만주나 연해주로 간 동포들, 6·25 전쟁 때 월남한 실향민들,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이데올로기 등쌀을 견디지 못해 제3국행을 택한 포로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산 설고 물 선 타국행을 감행한 이민자들….

시련과 질곡으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는 숱한 이방인을 낳았다.

부산 해운대구 장산 정상 아래 펼쳐진 드넓은 억새밭. 흰머리를 하늘거리며 무리 지어 서 있는 억새는 자유의 화신처럼 보인다.

'코리언 드림'을 그리며 우리나라로 온 동남아인과 조선족의 뿌리 잘린 삶은 또 어떤가. 동서고금의 세계사적 인구 이동을 생각하면 어쩌면 인간은 이방인이란 딱지를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배집단의 피지배집단 차별화에 따른 정치·경제·문화적 소외도 또 다른 이방인을 양산한다.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할 수 없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특정 진영의 입맛에 맞는 사관으로 획일화하려는 우리 권력층의 독선과 오만은 많은 국민에게 정신적 이방인의 삶을 강요한다. '역사의 사유화'는 '이방인의 역사'를 초래할 따름이다.

군사독재 시절 실존주의 철학이 유행하고, 부조리와 소외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을 그린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이방인'이 대학생의 필독서로 여겨졌던 것은 그런 암울한 시대상 때문이었다. 1982년 3월 초 열렸던 과 단합대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행사 장소가 학교 앞 다방이었는데, 이름이 '에뜨랑제(이방인)'였다.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당시 학과장을 맡았던 교수님은 대충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천을 통해 잘못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독서가 필요하다. 술·담배를 삼가라. 나도 한때 술·담배를 했는데, 그 때문에 기억력이 떨어져 공부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고 금주·금연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교수님의 말씀이 뼈저리게 와 닿지만 아직도 실천을 못하고 있다. 스승만한 제자가 없다는 말은 이래서 나오는 것인가.

장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안대교.

이방인에 대해 언급한 것은 산행이 부분적이나마 이방인의 삶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판단에서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와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고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어차피 그런 상황에서도 삶은 지속되니 스스로 각성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며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낼 정신의 근육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산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어려운 싸움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 않던가. 산행은 자신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디딤돌이다.

이런 자위를 하며 이번 산행지인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내리 구곡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행은 안적사 주차장에서 출발해 장산 정상(634m)과 구곡산 정상(434m)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거리는 약 14㎞, 소요시간은 5시간30분가량이다. 갈림길과 숲이 우거져 길을 식별하기 어려운 곳이 많으니 반드시 국제신문 리본을 따라와야 한다. 안적사 주차장에서 안적사 쪽으로 직진한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5분가량 더 가면 안적사가 나온다.

안적사에서 반송 쪽으로 걸어서 15분가량 거리에 있는 돌탑.

절집을 둘러보고 나와 반송으로 이어진 등산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다 5분쯤 후 임도에서 왼쪽으로 10분가량 걸으면 돌탑에 이른다. 여기서 왼편 장산 정상 쪽으로 진행한다. 10분쯤 후 장산너덜길 시작지점에서 오른편 억새밭 쪽으로 방향을 튼다. 25분가량 가다 보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후 20분가량의 거리에서 임도와 갈림길 2곳을 만나는데 모두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이와 달리 다음 45분가량 거리의 갈림길 3곳에서는 죄다 왼쪽으로 길을 잡아 가면 장산 정상에 닿는다.

레이더 기지가 들어선 정상은 머리를 짓누르는 듯 답답하지만 산 아래쪽으로는 시야가 탁 트여 가슴이 후련하다. 시계 방향으로 레이더 기지를 한 바퀴 돈다. 기장 해운대 수영 영도 황령산 수정산 동래 금정산 회동수원지 등등 부산 전역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정상 일주 후 임도에서 왼쪽, 5분쯤 후 갈림길에서도 왼쪽으로 간다. 10분가량 후 나오는 억새밭 갈림길에서는 오른쪽으로 진행하다 5분쯤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5분쯤 후 다시 오른쪽으로 걷다 20m가량 지나 왼쪽으로 꺾어 10분가량 가면 임도를 만난다.

장상 하산길에 만난 억새밭.

임도에서 오른쪽으로 직진하다 10분가량 후 임도를 버리고 왼쪽 오솔길로 접어든다. 5분쯤 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5분가량 후 사거리에서 직진해 올라가면 구곡산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서는 왼편 내리 쪽으로 하산한다. 10분쯤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또 10분가량 후 사거리에서 직진한다. 10분쯤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5분가량 후 갈림길에선 오른쪽으로 가면 5분쯤 후 무덤 2기가 나온다. 무덤에서 국제신문 리본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다 계곡을 건너면 출발지로 돌아온다.


◆떠나기 전에

- 두 수도승 '안심입명' 경지 도달 안적사 유래

기장군 안적사 전경.

신라 문무왕 원년(661년) 원효대사(617~686)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안적사(安寂寺)는 창건 설화가 흥미롭다.

원효대사와 의상조사(625~702)가 명산을 돌며 수도하던 시절, 장산 기슭을 지나가는데 숲 속에서 꾀꼬리 떼가 날아와 두 스님의 앞을 가로막으며 어깨와 팔에 안겼다. 이를 본 원효대사가 이곳이 성스러운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의 절터에 가람을 세웠다고 한다. 꾀꼬리 떼가 길을 막았다 해서 산 이름을 앵림산(鶯林山)이라 하고, 이곳에서 수도한 두 스님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서 적멸상(寂滅相)을 통관했다 하여 안적사(安寂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천공(天供) 설화'도 전해진다. 원효대사와 의상조사는 도를 깨치면 만나자고 기약한 뒤 각각 토굴에 들어가 수도를 시작했다. 어느 날 의상조사에게 천녀가 나타나 매일 함께 천공을 올리게 되었다. 의상조사는 이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원효대사를 청했으나 끝내 천녀가 나타나지 않자 원효대사는 기다리다 돌아가 버렸다. 그 후에 천녀가 나타나자 자존심이 상한 의상조사는 천녀를 나무랐다. 천녀는 가람 주위에 화광(火光)이 가득 차 들어올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원효대사는 의상조사의 교만한 마음을 알고 신통력으로 금강삼매화(金剛三昧火)를 놓은 것이다. 의상조사는 원효대사의 도력이 자기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그 뒤부터 원효대사를 사형으로 정중히 모시게 됐다고 한다. 안적사는 해방 후 소실되었으나 30년간 주석한 덕명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지어졌다. 경내에는 대웅전 적멸보탑 심인당 보림원 삼성각 등이 있다. 삼성각 좌우 벽에는 '천공' 탱화가 각각 1점씩 있다.


◆교통편

- 내리 시내버스 하차 안적사행
- 하산땐 해운대 방향 내려서야

기장읍 내리까지는 1001, 1003, 38, 39, 40, 63, 100, 139 등 시내버스가 운행해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내리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안적사까지 4.5㎞가량의 거리를 운행하는 교통편이 없다는 점이다. 자가용을 가져오면 안적사 주차장에 대고 올라가면 되지만 차가 없으면 4.5㎞를 걸어야 한다. 하산 때는 해운대 쪽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번 산행은 구곡산 등산이 목적이지만 기장 쪽에서 올라가 장산을 탄다는 데도 의의가 있다.

문의=스포츠레저부 (051)500-5147 이창우 산행대장 010-3563-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