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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피플] 울산예술고서 제2의 인생 성악가 엄정행

“고교 특강 맡았다 교장 됐죠”
글·사진=방종근 기자 | 2019.07.11 20:48
- 1980년대 한국대표 성악가
- 17년 전 교수 퇴직 뒤 귀향
- 강의 인연으로 교장직 맡아
- 손자뻘 음악인 육성에 보람
- 무대 많이 오르도록 도울 것

40대 이상 기성세대에게 이름을 아는 국내 성악가를 꼽으라면 대부분 가장 먼저 “엄정행”이라고 답할 것이다. 먹고살기에 바빠 앞만 보고 달리던 1970, 80년대 국민 대부분이 그를 통해서 성악을 알게 됐다. 또 그가 부르는 가곡을 들으면서 팍팍한 삶의 고뇌를 치유하고 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의 기성세대에겐 가히 향수이자 살아 있는 전설이다.

엄정행 울산예술고등학교 교장이 성악가에서 교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과정과 예고의 발전 방향을 밝히고 있다.
그가 최근 울산예술고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제2의 인생을 성공리에 펼쳐가고 있다. 엄정행(77) 교장을 찾아가 레전드의 라이프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먼저 한때 한국을 대표했던 성악가이자 대학교수였던 그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된 계기가 궁금했다.

“17년 전 대학(경희대 음대)을 퇴직하고 고향(양산시)에 와 생활하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울산예고 황우춘 이사장님에게 학생 특강 요청을 받은 게 시발이 됐습니다. 계속 사양하다 한 번만 하자 한 것이 2년간 매달 한 차씩로 늘어나고, 급기야 교장을 맡아 달라는 청을 받게 됐습니다.”

지난 3월 교장으로 취임한 그는 한 학기를 보내고 있다. 5개월 남짓한 시간이지만 엄 교장에게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매우 짧다. 교장으로 보낸 지난 시간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그는 “대학교수는, 특히 음대 쪽은 혼자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교장은 교육자이면서도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경영자로서의 역량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부임 초기에는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렵고 긴장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며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자신감을 갖게 됐고 보람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성악계의 거목과 같은 존재가 교장이다 보니 주변의 기대도 높고, 스스로 책임감도 더 막중하게 느끼리라 여겨졌다. 엄 교장은 “부임 초만 해도 학교에 활기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교내 미화에도 신경을 쓰고 교사는 물론 학생들과의 관계를 원만히 하고자 힘썼다”며 “그 결과 지금은 원하는 바의 60% 정도는 달성했다. 연내에는 기대치를 넘어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와 마인드를 알고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며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대화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엄정행호’가 이끄는 울산예고가 전국적인 예술고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엄 교장은 “우수한 예능인재를 많이 배출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기 위해선 무엇보다 학생들이 무대에 많이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는 “예고는 일반고와 달리 맨투맨식 교육이다 보니 우수한 교사가 더 확충돼야 하고 기자재도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며 “학교 육성을 사립법인에만 맡겨둘게 아니라 교육 당국도 보다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엄 교장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뻘 학생들과 한 공간에서 호흡하고 성장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너무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며 “이 일을 허락하는 그날까지 온 정열을 불사르겠다”고 다짐했다.

엄 교장은 부산 동래고 재학 때 배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음악 교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경희대 음대에 진학해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34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글·사진=방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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