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회와 인연 맺고 30년 지원
- 강영서·김마그너스 등 육성
- 동계체전서 부산 12년간 5위

- “대학 팀 없고 지도자 태부족
- 지역서 기른 인재 유출 막아야”

부산이 ‘겨울 스포츠의 꽃’인 스키와 인연이 없는 도시라는 얘기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눈이 거의 오지 않는 특성상 겨울만 되면 선수들은 강원도나 일본으로 향한다. 부산 인근에 유일한 스키장이 하나 있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진행하기엔 부족하다.

김태순 부산시스키협회장은 “유망주를 꾸준히 길러 부산스키의 명맥을 잇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말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만년 꼴찌를 기록해도 모자랄 여건이지만, 부산 선수들의 대회 성적은 이상하리만큼 상위권이다. 지난해 전국동계체전에서 크로스컨트리 4관왕 등 스키에서만 금메달 4개, 은메달 6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부산이 동계체전에서 12년 연속 종합 5위를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다. 부산 스키는 19일부터 나흘간 서울 강원 등지에서 열리는 동계체전에서 다시 한번 메달 사냥에 나선다.

부산이 올린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선전 뒤에는 한 60대 신사가 버티고 있다. 부산시스키협회 김태순(65)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로 3년째 협회를 이끄는 김 회장은 부산 스키에 젊음을 온전히 바쳤다. 30대 중반 우연한 기회로 부산 스키와 인연을 맺고 협회 일을 해온 게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김 회장은 “나는 선수 출신이 아니다. 회장으로서 선수들에게 지원도 많이 해주지 못한다”며 “이래저래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다. 스키를 물 찬 제비처럼 타지도 못한다”고 겸양을 표하며 웃어 보였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벅참과 아쉬움이 교차한 순간으로 기억한다. 이상호가 스노보드의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설상 종목 첫 은메달을 땄고, 부산이 키운 강영서(한국체육대) 김마그너스 등 선수들도 평창 무대를 누볐다. 그는 “순위권에 들어가는 게 쉽지 않은데 설상에서 최초의 메달을 땄으니 난리가 났다. 하지만 당시의 인기와 기세가 부산까지 이어지지 못해 안타깝다”고 쓴맛을 다셨다. 김 회장이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선수를 성인이 될 때까지 잘 길러내는 연계시스템의 부재다. 현재 부산에서는 신도중(남·여) 부산진여고 대연고(남)가 스키부를 운영 중이고, 2년 전 부산시체육회 산하에 스키 실업팀까지 창단됐다. 하지만 지역 대학에 팀이 없어 고교를 졸업한 직후 강원도나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진학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역에서 길러낸 강영서 선수가 대표적이다. 김 회장은 “지역에 진학할 대학이 없어 향토 선수들이 유출되고 있다. 강원도나 다른 곳에서는 우리 선수들을 어서 오라고 반긴다. 자식 농사처럼 뼈 빠지게 선수를 키워놨더니 자식 하나를 뺏긴 것마냥 서운한 게 사실”이라며 “부산에 갈 대학이 없다는 건 영원한 숙제다. 최근에는 초등학생 선수마저 줄고 있다”고 열악한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전문 경기지도자의 부재도 문제라고 본다. 시체육회에 속한 감독 한 명을 제외하면 부산의 스키 종목 경기지도자는 없는 상태다. 김 회장은 “시·도 교육청의 설상 종목 지도자 현황을 보면 전남 전북 울산 등은 각각 3, 5, 2명이 있지만 부산만 한 명도 없다. 매년 한 명의 감독이 수십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종목의 특성상 강원도나 해외 전지훈련이 많아 선수 관리에 어려움이 크다”고 현실을 전했다.

그래도 김 회장은 부산 스키의 현실이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말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정마리아(부산진여고) 정모세(신도중) 등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성장하는 어린 선수들이 올해 체전에서 금, 은메달 10개 이상 딸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부산 스키계에 유망주 한둘이라도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는 게 마지막 소명이자 부산 스키의 명맥을 잇는 길”이라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