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안사정 안 좋아 고졸 취업
- ‘39살 지점장’ 14년 전 화제
- 마린시티지점장 땐 실적 1위
- 올해 인사서 유일 여성 임원
- 일과 감정 분리할 줄 알아야

BNK금융그룹은 지난달 18일 금융지주를 비롯해 주력 계열사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의 임원(본부장급 포함) 25명의 정기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여성은 박경희(53) 전 대연동 지점장(상무 대우)과 경남은행 이정원 전 본부장(상무 대우) 등 2명이다. 기존 여성 임원 1명이 최근 퇴사하면서 부산은행 내 여성 임원은 박 상무 1명뿐이다.

BNK부산은행 박경희 상무가 1등 수식어를 달게 된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박 신임 상무는 39세의 나이인 2005년 지점장으로 승진하며 조직 내 파란을 일으켰다. 지금도 일반적으로 연령이 50대가 돼야 오를 수 있는 지점장에 15년 전 마흔도 안 된 여성 직원이 승진했다는 것은 파격 중에서도 파격이었다. 그는 “당시 저 때문에 나이 또는 연차 순서대로 내부 정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3개월에 걸쳐 바꾸기도 했다”며 “조직 내에 정말 일을 잘하는 직원이 많이 있는데 운 좋게 계속 인정을 받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상무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4년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바로 부산은행에 입행했다. 그는 “19살의 어린 저로서는 당시 꽤 급여가 많은 은행에서 근무하며 동생의 학비와 집안 생활비를 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며 “놀이터가 따로 필요 없었다. 직장 생활이 재미있어서 휴일에도 지점에 나와 청소하고 사무실과 탕비실 식당 등을 꾸미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술을 못 마시고 특별한 학연, 지연, 동문이 없었던 여직원에게 영업은 어려운 영역이었다. 박 상무는 “하다못해 군대 동기도 없었고 결혼을 안 했으니 시가 쪽 인맥을 기대할 여건도 안 됐다”며 “그래서 고민한 것이 내가 상대(고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먼저 찾아 도와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상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따져 접근하기 마련이다. 박 상무는 반대로 상대가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서 주니 따로 영업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원칙은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이어졌다. 방송통신대에 입학해 동료 학생과 스터디 모임을 하는 등 친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박 상무를 도와줬다.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학원에서는 2년6개월간 전 과목 A+를 받아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박 상무는 2009년 마린시티지점장을 맡아 175개 지점(출장소 제외) 중 영업 실적 1위를 달성했다.1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동안 직장 내 시기와 질투도 엄청났을 터. 박 상무는 “시기와 질투를 ‘견딘다’고 생각했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라며 “사람을 상대로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켰다. 오직 목표를 보고 수치를 상대로 경쟁하므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았다”고 비결을 소개했다.

사회생활을 하거나 준비 중인 여성 후배에게 조언을 구하자 박 상무는 “여성의 가장 큰 약점은 일과 개인감정을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고 그 차이는 정말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인감정을 일에, 또 직장 생활에 연관 지어 업무를 그르치는 경우를 볼 때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각오와 향후 계획을 묻자 그는 “승진 소식을 듣고 어떤 공부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부터 했다”며 “저에 대한 믿음이 있어 이런 자리를 주셨는데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점장을 고객으로 생각하고 항상 배우는 자세로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박 상무는 1984년 부산은행에 들어온 후 2005년 누리마루지점장을 비롯해 해운대지점장, 대연동지점장, 고객만족부 부장 등을 거쳤다.

조민희 기자 c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