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 예술가 모임 ‘풍각쟁이’
- ‘더러운 돈·관계들’ 주제로
- BIFF엔 없는 이야기 다뤄
- 취지 공감 영화인 적극 참여
- 관객 큰 호응에 예술 힘 느껴

“우리 예술인은 누구도 소외당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림자영화제’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 영화제를 만들겠습니다.”

윤희배 작가는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 그림자영화제는 예술의 힘을 다시 느끼고 ‘먹고사니즘’에 빠진 우리 예술인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지난 8~13일 부산에서는 특별한 영화제가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볼 수 없는 ‘그림자’의 이야기를 하겠다며 올해 처음 개최된 ‘그림자영화제(Shadow, Off-off Film Festival·SHOFF)’가 그것. 15일 부산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의 한 갤러리에서 그림자영화제 기획에 참여한 미술가 윤희배(여·56) 작가를 만났다.

윤 작가는 그림자영화제가 만들어진 계기에 대해 “부산의 예술가로 구성된 풍각쟁이 놀이마당이라는 모임이 있다. 이들과 BIFF 기간 무엇을 할까 의견을 나눴다. BIFF라는 화려한 조명에 가려 있는 그림자 얘기가 나왔다. 우리 주변에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시민의 일상이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BIFF에서 다루지 않는 그림자의 이야기로 영화제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올해는 ‘더러운 돈, 더러운 관계들’이라는 주제를 잡고, 엘시티와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 투쟁 등 부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한 영화나 영상을 상영했다.

윤 작가는 “이들은 집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지만, 주류 사회의 관심 밖에 있다. 예술·문화를 접목해 이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부산의 이야기도 있지만, 평화 국가폭력 소수문화 반려동물 환경 등 도 폭넓게 주제로 다뤘다”고 설명했다.영화를 섭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감독이 그림자영화제의 취지에 공감해주고 사비를 들여 영화제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해 준 덕이었다. 영화제 프로그램팀 경험과 BIFF에서 동남아시아와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네트워크를 가진 풍각쟁이 회원이 작품을 선정했다. 윤 작가는 “상영작 중 여러 이유로 BIFF에서 거절당한 작품도 있다. 빛을 보지 못한 독립영화와 단편영화뿐만 아니라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 대중영화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지원도, 후원도 없었다. ‘SHOFF’가 새겨진 주황색 머그잔을 제작해 개인 후원을 받아 150만 원을 마련했다. 윤 작가는 “지원보다는 자체적으로 해보자는 의견이 강했다. 머그잔을 팔아 후원을 받으려고 했는데, 특별히 가격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하나에 1만5000원에 팔 때도 있고, 그냥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은 물론 풍산 노동자도 좋아했다. 10년간 투쟁하느라 문화생활을 못 했는데, 영화와 공연이 너무 좋았다는 거다. 폐막식이 열린 지난 13일 마지막 영화가 끝나자 풍산 노동자가 서운한 기색을 보이더라”며 “예산이 부족해 추위를 쫓을 따뜻한 차도 대접하지 못했다. 모두 야외에서 덜덜 떨면서 영화를 봤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예술의 힘을 다시 느꼈다. ‘먹고사니즘’에 빠진 우리 예술인모두도 영감을 얻는 기회였다”며 “현재 풍각쟁이 예술인은 8명이지만, 함께한 사람은 모두 50여 명이다. 내년에도 그림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대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충북 충주 출생인 윤 작가는 1988년부터 부산에 정착했다. 현재 영도구 흰여울문화마을에서 갤러리Y를 운영하고 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