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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주 4일 근무’ 공론화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2024.06.16 19:38
14~16세기 영국 민중의 삶은 피폐했다. 프랑스와의 백년전쟁(1337~1453년)에 이어 왕권을 둘러싼 내란인 장미전쟁(1455~1485년)이 두 세기 넘게 지속된 탓이다. 귀족(지주)들은 농민들을 내쫓고 땅에 울타리를 쳤다. 양을 대량 방목해 모직 산업의 원료인 털(毛)을 얻기 위해서였다. 세계사에 자주 등장하는 인클로저(enclosure)다. 생계를 잃은 농민들은 도적이 되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말이 그때 유행했다.

영국 대법관 출신 토머스 모어는 세상의 혼탁함에 진절머리 쳤다. 1516년 플라톤이 꿈꾼 이상 국가를 담은 책 ‘유토피아’를 펴낸 이유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인 유토피아에선 하루 6시간만 일한다. 과도한 노동이 국민의 자기 계발과 여가 생활을 가로 막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모어가 산업혁명기 하루 14~15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봤다면 땅을 치지 않았을까.

장시간 노동 관행은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출범을 계기로 차츰 나아진다. 이제는 하루 8시간과 주 5일 근무가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몇몇 국가에선 한 발 더 나아가 주 4일 근무가 이슈다. 미국의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주 4일 근무 법률안에는 앞으로 4년간 표준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낮추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도 ‘단계적으로’ 주 4일제를 검토 중이다.

여의도에선 주 4.5일제 도입(더불어민주당)이나 초과근무시간을 수당 대신 시간으로 보상받아 주 4일 또는 4.5일만 일해도 되는 근무 마일리지(국민의힘) 도입을 논의 중이다. 기업은 더 빨리 움직인다. 포스코는 올해 ‘격주 주 4일제’를 도입(생산직 제외)했다. 첫째 주 5일 일하면 둘째 주는 4일 근무하는 식이다. SK그룹은 주 4일제를 부분 시행한다.
소수 대기업의 전유물이던 주 4일제가 노사정 대화에 오른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오는 21일 ‘일·생활 균형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열어 근로시간 개편을 논의한다. 현재 노사는 각각 근로시간 ‘단축’과 ‘유연성’을 강조한다. 경영계는 현재의 주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틀은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자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주 4일제’를 22대 국회 우선 입법과제로 꼽는다.

당장 합의안이 도출되기에는 노사 이견이 크다. 기업의 인건비 증가 우려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럼에도 공론화의 첫 발을 뗀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모어가 500여 년 전 상상했던 ‘유토피아’는 과연 현실이 될까.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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