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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신경림의 사랑노래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2024.05.23 19:02
지난 22일 별세한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는 지금도 많은 독자가 찾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산업화 시대 노동자의 애환이 손에 잡힐 듯하다.

고인의 시는 쉽다. 민초의 굴곡진 인생을 생활 언어로 노래한 덕분이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농무’ 중)

꾸민 데 없는 질박한 시어는 삶에서 체득한 산물이다. 1956년 등단한 그는 시 쓰는 일에 회의를 느껴 10년간 광부 잡부 장사꾼 강사를 전전한다. 문단에 복귀해선 민요를 채록하러 전국을 떠돌았다. 유신 반대 운동으로 ‘비자발적 방랑 생활’에 내몰리기도 했다. 그때 심경이 ‘목계장터’에 담겼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중략).”

신경림 시의 리듬감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2002년 발간된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에는 심상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요즈음 시에 리듬이 없다는 지적은 결국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이다.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으로서….”
고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활동했다. ‘삶이 민주화되지 않으면 문학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일까.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고초를 겪었다.

고인은 늘 음지에서 조각난 꿈을 이으려 했다.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려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중)

흐트러진 꿈 퍼즐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 지금도 청년들은 집 사기 어려워, 또는 아이 키울 자신이 없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빈부 격차의 깊은 심연은 박탈감을 키운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포기했던 청년은 노인이 되어서도 폐지를 줍는다. 그래도 고인은 쓰러진 것들의 꿈을 놓지 않았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염치 없이 고맙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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