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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영화밖 ‘헤어질 결심’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2022.08.09 19:37
끈 없는 뿌연 미세그물. 갇히면 시야를 가려 모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는 자발적 마비 지대. 바람 따라 땅 위를 떠도는 물방울 무리, 곧 안개다. 안개는 이런 특성 때문에 기존 가치나 질서와 판이하게 다른 인생의 이색 국면에 비견된다. 작가 김승옥은 1964년 발표한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 삶의 ‘안개 효과’를 예리하게 포착했다.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 부귀를 얻은 주인공이 안개 고장인 고향에 내려와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부귀를 좇아 연인에 등을 돌린다는 게 소설 줄거리다. 여기서 안개는 종전의 생각과 판단을 괄호 속에 집어넣고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 기능을 한다. 그렇게 해서 발견한 사랑은 삶의 진실이다.

김수용 감독은 1967년 ‘무진기행’을 영화화했다. “한국영화의 근대화를 70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은 명작 ‘안개’다. 이봉조가 이 영화의 음악을 맡아 16세 신인 정훈희를 일약 유명가수 반열에 올려놓은 명곡 ‘안개’를 작곡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생각하면 무엇하나/지나간 추억/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아 아/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나는 간다’. 박찬욱 감독은 이 노래에 감동받아 영화 ‘헤어질 결심’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안개로 엮인 50여 년의 인연이 참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박 감독이 영화 ‘헤어질 결심’에 풀어놓은 안개는 자못 인상적이다.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박해일)와 용의자(탕웨이)의 사랑 얘기다.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랑을 가능케 하는 게 안개다. 영화 포스터의 글귀처럼 안개는 ‘짙어지는 의심’을 ‘깊어지는 관심’으로 변화시킨다. 용의자의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도 눈감는 형사의 사랑이나, 그런 형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살하는 용의자의 사랑은 안개 속에서 찾은 진실이다. 중요한 건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 사랑에는 자살이란 극단적 방법의 ‘헤어질 결심’이 있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치열하게 사랑했다는 뜻이다.

연인 간의 사랑뿐이겠는가.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다. 위민(爲民)과 애민(愛民)을 최고가치로 삼는 정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20%대로 추락한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비상체제로 전환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당정이 거듭 새겨야 할 일이다. 잦은 인사 실패, 독단과 불통 등 다수 국민이 지적한 구태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면 민심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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