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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난중일기’ 톺아보기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2022.08.07 20:00
영화 ‘한산:용의 출현’ 마지막 장면. 러닝타임 130분의 대미는 ‘한산대첩’ 1년 뒤로 설정됐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을 ‘큰 산’이라고 설명했다. 절체절명의 조국 조선을 구하는 수군 본영, 삼도수군통제영의 위상을 되새기려는 뜻이지 싶다. 실제로 한산도는 閑山島로 표기하고 있으나 크다는 뜻의 한(韓)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의 상징성이 오롯하다.

이 영화를 만든 김한민 감독은 ‘난중일기’를 끼고 살았다고 밝혔다. 마음에 위안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전작인 ‘명량’ 준비에 착수했고,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노량’을 올겨울 개봉할 예정이니 12년 동안 겪은 스트레스를 짐작할 만하다.

비슷한 시기, ‘칼의 노래’를 쓴 김훈 소설가가 신작 ‘하얼빈’을 내놓으며 ‘난중일기’를 재소환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무렵을 담은 소설인데, 그 집필의 단초가 안 의사 취조 기록, 즉 신문 조서였다. 김 소설가는 이 조서와 함께 ‘난중일기’를 인생을 흔든 두 가지 글이었다고 확인했다.

대한민국 영화 흥행사 최고 기록(2014년 개봉 ‘명량’·1761만 명)을 가진 50대 감독과 일흔 살을 넘긴 소설가가 꼭 짚어 거론한 ‘난중일기’다. ‘난중일기’는 김 감독에게 위기 돌파의 희미한 등불, 김 소설가에게 글쟁이란 훈장을 단 계기인 셈이다. 행간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고, 당시 사람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인 덕분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이순신은 마흔 여덟이었다. 그는 4월 13일 전쟁이 나기 하루 전인 4월 12일 거북선을 완성했다. 전세는 15일 만에 도성을 잃을 만큼 기울었으나 그는 기어이 조선의 운명을 바꿨다. 그 임진왜란 7년을 고스란히 담은 이순신 장군 일기가 ‘난중일기’다. 그런데 1592년 6월 11일부터 8월 23일까지 기록이 ‘난중일기’에 없다. 한산대첩 정황이 빠진 것인데, 그만큼 ‘압도적 승리’에 전력을 기울였으리라.

‘난중일기’를 다시 읽으며 곱씹는 한 가지 일은 1967년 12월 31일 발생한 현충사 ‘난중일기’ 도난사건이다. 범인 일당은 부산에서 잡혔다. 일본으로 이를 밀반출하려고 훔쳤다는 것이다. 고추장 항아리 속에 숨겨뒀던 ‘난중일기’는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고, 세상을 구한 귀한 기록도 한갓 범죄의 대상이 되는 세상, 불의가 정의를 덮는 세상이 여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난중일기’가 주는 교훈이다.

정상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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