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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싼것 찾아 삼만리

이경식 기자 yisg@kookje.co.kr | 2022.07.03 19:34
‘발품’의 시대다. 산다는 게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인 만큼 발품 파는 건 일상사이겠지만, 요즘처럼 절실하게 찾아 헤맨 적이 있었던가 싶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고물가가 가장 큰 원인이다. 기름값이 저렴한 주유소를 찾기 위해 유가정보사이트를 검색하는 건 기본이다. 보다 이자가 싼 대출을 찾으려는 대출비교 서비스 수요도 급증했다. 핀테크 플랫폼 ‘토스’의 지난달 대출비교 서비스 실행액은 1조 원을 넘었다. 금융권에선 지난달 전체 실행액이 2조 원을 돌파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저소득층의 발품 고통은 더 크다. “네 팩에 1만 원 하던 반찬도 2만 원이 됐다. 반찬이나 생필품을 살 때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싼 데를 찾는다. 3만 걸음을 걸은 날도 있다.” 빈곤사회연대가 지난 2월 18일부터 4월 19일까지 기초생활보장급여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계부 조사에서 나타난 사례다. 한 수급자는 몸이 불편한데도 차비를 아끼려고 왕복 1시간 넘게 걸리는 곳까지 걸어가서 유통기한이 다 되어 싸게 파는 식료품을 산다. 돈과 시간이 모두 부족한 취업준비생은 돈을 아끼기 위해 시간을 포기한 채 싼 물건을 찾아 발품을 판다.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며 고민하다 빈손으로 돌아서는 소비자는 시장의 흔한 풍경이다. ‘싼것 찾아 삼만리’를 마다하지 않는 서민의 고단한 일상이다.

‘찾아 삼만리’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1976년 니폰 애니메이션과 후지 TV가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를 내놓으면서다.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가 1886년 발표한 동화집 ‘쿠오레’에 삽입된 단편 ‘아펜니니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다. 돈 벌러 떠난 엄마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간 소년이 온갖 고생 끝에 엄마를 만나 무사히 이탈리아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19세기 후반에서 1910년대까지 이탈리아에선 900만 명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 가난을 벗어나려는 ‘이탈리아 디아스포라’다.

동화는 해피 엔딩이다. 삼만리의 발품은 헛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발품은 목적 달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치솟는 물가 억제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뢰성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아서다. 유류세 인하 폭을 높였지만, 기름을 적게 쓰는 저소득층보다 많이 사용하는 고소득층에 유리하다. 모든 정책 방향이 기업과 고소득층에 쏠려 있다. 당정은 목소리만 높인다. 보여주기식 ‘호통 정치’다. 우리 방황의 근원은 그런 정치에 있다. 정작 삼만리의 발품이 필요한 건 정치권의 자기 성찰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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