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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양발잡이 손흥민

정상도 기자 jsdo@kookje.co.kr | 2022.05.23 19:33
요즘도 많이 쓰는 영어 학습서인 ‘보카(VOCA)22000’에 얽힌 30년 넘은 추억담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들에게 보카22000은 그 당시에도 필독서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Vocabulary 22000’이라고 단어를 모두 부르거나 ‘바퀴벌레’란 별칭을 쓰는 정도였다. 어근을 중심으로 영어 어휘력을 높여주는 이 책에서 아직도 기억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다.

그건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마법과도 같은 말이었다. 적어도 왼손잡이, 그것도 한국의 왼손잡이에겐 그랬다. 바로 ‘양손잡이의’란 뜻을 가진 ‘ambidextrous’였다. ‘둘 다’를 의미하는 ‘ambi’에서 나온 이 단어는 양손잡이를 표현하는 데서 나아가 손재주가 뛰어나다거나 영민하다는 뜻까지 담고 있다. 이 단어를 보면서 무릎을 쳤던건 군대 생활 때 사격 훈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초등학생 무렵 왼손으로 수저를 든다고 밥상 앞에서 혼이 난 일을 빼면 일상에서 그리 큰 불편은 없었다. 하지만 사격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1980년대 육군 병사 주력 화기는 M16 소총이었다. 이 소총은 격발하면 탄피가 오른쪽으로 나온다. 왼쪽 뺨을 탄피 출구에 붙여야 하는 왼손잡이가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졸지에 오른손잡이가 되어야 했으니 군기가 센 사격장에서 세상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자세도 엉성하거니와 그런 상황에서 사격 성적이 좋을리 없었다. 그래서 동료들이 사격 훈련으로 땀흘리는 동안 부대 외곽 경계병으로 몫(?)을 다했던 기억이 새롭다.

병역 의무를 다하고 취업을 앞둔 마당에 펼쳐본 영어책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그 느낌이 남달랐다. 그 후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상관없이 쉽게 쓸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도 알게 됐다. 타고난 성별이나 문화적 배경, 특히 장애가 벽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편견을 깨뜨리는 만큼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

손흥민(30·토트넘)이 아시아 선수론 처음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23골로 정규리그 득점 공동 1위에 올랐다. 차범근을 넘어 ‘한국 선수 단일 시즌 유럽리그 최다 골’ 기록이다. 올해 11월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린다는 점에서 더 반갑다. 그는 후천적 노력으로 양발잡이 선수(Two-footed player)로 거듭났다. 왼발로 500개, 오른발로 500개씩 매일 1000개의 슛을 연습하며 얻은 성과다. 양발잡이 득점왕의 투혼이 왼손잡이를 포함 세상 모든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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