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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내가 아는 게 다 옳다고? /구영기

구영기 전 생명그물 대표 | 2022.01.26 19:58
목욕탕에서 언뜻 본 시계 두 개가 하필 서로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서야 이 시계들이 말하는 시각이 거짓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시계가 하나뿐이었다면 그 시각을 의심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알고 있는 게 그릇된 허상일 수 있는데, 마냥 염려하지 않고 산다. 그리 어리석다.

어느 이름이건 다 연유가 있는 법이다. 낙동강이 강 이름 낙(洛) 자에 동녘 동(東)자를 쓰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1811년 정약용이 쓴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황수(黃水)는 태백산 황지에서 시작한다. 서남으로 흘러 3백리, 함창에 닿고 동으로 굽이쳐 남으로 또 3백리, 함안에 이른다. 북향으로 꺾어 동류(東流) 1백리, 김해의 동북 황산(黃山)포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쪽 바다로 들어간다. 낙동(洛東)이라 함은 가락(駕洛)의 동(東)쪽이라는 말이다’.

낙동강을 들 때면 이를 인용하며 잘난 체했다. “가락의 동쪽에 있어 낙동강이라 한다.” 그리 나대다 우연히 들여다본 지도 한 장에 허탈해지고 말았다.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동국팔도대총도’에는 같을 동(同)자를 쓴 낙동강(洛同江)이 찍혀 있었다.

옛날에 지도를 베껴 그리는 과정에서 잘못 옮기는 일이 있었다. 그 탓일 수도 있고, 혼용해서 썼을 수도 있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달리 썼을 수도 있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황망할 뿐이다. 내 앎이란 게 이리도 가볍구나.

조선시대 부산진성이 있던 산릉 모양이 시루처럼 생겨서 증산(甑山)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도 그 이름이 남았다. 시루와 가마솥 둘 다 떡 찌는데 쓰는 용기이고, 증산이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생겨 부산(釜山)이 증산에서 비롯되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경상도 산 중에 가마솥 엎어놓은 것처럼 둥긋하게 생긴 산이 이것뿐일까? 1474년 제작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동래부산포지도’에는 부자 부(富)자를 쓴 부산(富山)이다.

지금 한국해양대학교 아치캠퍼스가 있는 섬이 조도다. ‘동래부지’에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도(冬柏島)로 기록되어 있었다는데, 부산포(釜山浦) 해전 때 이 섬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의 기치(旗幟)를 끌어 눕히고 동백섬을 탈환하였다. 치를 뉘었다 해서 이 섬을 다시 와치도(臥幟島)라는 생경한 말로 불렀다는데, 오늘의 이름인 아치섬은 이 와치섬에서 전음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섬의 또 다른 이름이 아침 조(朝) 자 섬 도(島)자 해서 조도다. 해가 뜨는 아침 섬 아닐까? 아침 섬이라 하다 받침이 탈락하여 아치 섬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내 의심이다.

우리에게 전하는 역사는 오직 승리자의 기록이다. 패자의 변명은 휘발되고 없다. 견훤이 경주로 쳐들어갔을 때 경애왕은 하필 그 추운 날 포석정에서 술잔치를 벌이며 놀고 있었을까? 따뜻한 궁궐 안에서 안 마시고? 나라의 위기가 백척간두에 이르렀는데도 술판이나 벌이고 있었으니 패망이 당연하다고 배운 내 지식이 과연 진실한가?

백제가 망조에 든 연유의 하나가 삼천궁녀다. 나라가 망하는 날, 낙화암에서 꽃같이 떨어졌다고 했다. 과연 궁녀의 정원이 삼천 명이었을까? 그 당시 아주 많은 수를 가리키는 말이 삼천이었으리라는 게 내 짐작이다.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를 따 먹어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는 동방삭의 나이도 삼천갑자였지 않은가. 백제는 부강한 나라였기에 응당 많은 궁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승리자가 쓴 역사는 당연히 망한 나라에 대한 욕이자 자신의 침탈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홍보문이었을 것이다. 이를 기록한 사관은 승자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불렀을 터이고 그렇게 남아 전해지는 왜곡된 역사 아닐까.

황희 정승이 청백리였다고? 어사 박문수는? 엉터리 이야기로 석회화된 우리의 사고를 깨부수어야 한다. 나의 뇌는 결함투성이다. 내 쪼잔한 자존심이 맹목적인 자기합리화로 철갑을 두르고 침을 세우지 않았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또 내 생각이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할 때에만 겸손과 배려가 들어선다. 거듭 조심하여 내 사고가 말랑해지고 목소리가 나긋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밑바탕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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