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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을 쓰게 되자 오리무중 바다에서 방향을 가늠하게 됐다. 나침반은 서기전 206년께 중국 한나라에서 발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11세기 송나라에서 항해에 나침반을 쓰기 시작했다. 14세기에는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서도 나침반을 사용하게 됐다. 자성을 띤 쇠바늘은 지구자기장 영향으로 남북 방향을 가리킨다. 이런 성질을 활용한 나침반을 쓰면 동서남북을 헤아릴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남쪽을 가리키는 쇠’라는 뜻으로 지남철이라 불렀던 기억이 있다. 막대자석을 실에 묶어 매달아 놓으면 빙그르 돌아 남북을 가리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잡고 항해하려면 나침반이 필수다. 여기에 위도를 알 수 있는 사분의나 육분의, 경도를 알 수 있는 해상시계가 발명되면서 먼바다 항해가 안전해졌다. 위도와 경도가 만나는 점으로 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육분의(섹스턴트·sextant)는 수평선을 기준으로 태양이나 별과 같은 천체의 고도를 재서 지구상 위도를 알 수 있는 항해기기다. 해상시계(크로노미터·chronometer)는 흔들리는 배에서도 정확한 시간을 잴 수 있는 항해기기다. 경도 0도에서의 기준 시간과 배가 있는 곳의 시간 차이로 경도를 계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러한 장비 덕분에 대양 항해가 가능했다.
요즘 자동차에는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다. 배나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인공위성 덕분에 배가 바다 어디에 있더라도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을 이용한 자동항법장치, 즉 내비게이션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사실 내비게이션이란 용어는 배의 항해(navigation)를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다.
내비게이션으로 편리하게 길을 찾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길들다 보니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금방 ‘길치’가 된다. 계산기가 발명되자 암산이 어려워졌다. 스마트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해두자 심지어 자기 전화번호도 기억 못 하는 때가 생겼다. 노래방기기가 나오자 노래 가사를 외우기가 힘들어졌다. 이처럼 부작용은 있지만, 편리함은 나무랄 수 없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항해 안전성은 높아졌다. 지금은 e-내비게이션으로 한 단계 진화 중이다. e-내비게이션은 차세대 해상 항법장치다. 해상 정보를 수집·분석해 통합적으로 활용하면서 운항 관련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 해상 안전을 도모하고 해양환경을 보호하는 데 이를 요긴하게 쓸 수 있다.우리나라가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e-내비게이션은 LTE 이동통신을 해양 환경에 맞도록 개선한 초고속 해상무선통신(LTE-M)을 통신망으로 한다. 데이터 통신으로 음성 통신은 물론 항해에 필수인 전자해도와 기상도 등 정보를 제공한다. 사고 발생 때 구조를 요청하는 빠른 신고도 가능해진다. 해양수산부는 육지에서 100㎞ 떨어진 바다까지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는 초고속 해상무선통신망을 구축하고 있다. 전국 연안에 LTE-M 기지국 등 기반시설을 만들고, 선박에도 LTE-M 송수신기를 설치하고 있다. e-내비게이션 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 실시간으로 해양 정보가 제공돼 선박 충돌·좌초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사고가 생겨도 분초를 다투는 빠른 구조가 가능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선박도 진화한다. 자율운항선박이 곧 선보일 예정이다. 인공지능이 선장과 선원을 대신해 항해하는 무인선박이다. 자율운항선박은 항해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분석해 스스로 운항한다. ‘인공지능 선장’은 기계학습(머신 러닝)을 통해 점점 똑똑해진다. 기상자료를 분석해 항로를 바꾸고, 위험 요소를 파악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프로기사와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고, 닥터 왓슨이 명의를 대신해 진료하는 세상이 되었다. ‘선장’ 역할을 대신할 인공지능 선장의 출현도 가시화되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은 복잡한 도로를 주행해야 하는 자율주행자동차보다 오히려 더 빨리 실용화될 수 있다.
나침반을 이용했던 항해술에서 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항해시대가 오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은 바로 인공위성이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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