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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시민 불안케 하는 세력에 맞서자 /심성보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4.07 19:27
한국이 코로나 방역 국가관리체제가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해외로부터 진단키트, 드라이브 스루 등 ‘한국 모델’의 노하우 전수 요청도 잇따른다.

한국의 성과는 정부의 발 빠른 대처와 헌신적인 의료진, 성숙한 시민사회가 어우러진 결과로 보인다. 감염 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해 방역정책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끌어냈고, 이는 시민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로 이어졌다. 사재기 없고 마스크를 잘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하고 있다. 이 모두 시민사회의 성숙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이런 풍경은 미국 슈퍼마켓에 물건이 없어 살 수 없는 풍경하고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토크빌이 미국을 1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아메리카의 민주주의’(1835)는 시민의 능동성·자발성 등 시민적 미덕을 갖춘 ‘시민사회’를 칭송한 바 있는데 그런 미덕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 사회의 이런 풍토는 원자화된 개인과 극단적 개인주의 삶의 양식이 팽배함을 나타낸다. 평화 시기 시민의식이 위기 사태에는 매우 취약한 미국 사회의 현재 모습은 공동체의식이나 시민의식의 결속력 등 사회적 자본이 강고하지 않음을 방증한다.

물론 우리 사회에도 성숙한 시민성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세력이 있다. 신천지 등 일부 종교계의 행동이 그렇다. 이들은 코로나 방역 관리체제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다. 사실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협조하지 않는 일부 교회는 이웃 사랑의 종교라고 말할 수 없다. 시민을 구원하기는커녕 불안 조장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시민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공동체의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물리적 거리두기’를 외면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진정 이들 교회는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신에 대한 숭배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성(聖)의 세계가 속(俗)의 세계를 지도하지 못하니 큰일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켕이 우려하였듯 성의 윤리가 속의 윤리를 지도하지 못하면, 사회의 무규범 현상이 범람하여 사회 위기가 초래된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종교(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로 신과 인간의 ‘재결속(religare)’ 의미를 갖는다 하는데, 신과의 수직적 결속 논리가 이웃과의 수평적 결속을 외면하면 그것은 이미 종교의 본뜻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을 불안하게 하는 또 하나의 세력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이들은 시민의 바람과 기대는 안중에도 없다. 소수 정당을 배려한다는 비례정당의 결성 및 비례위원 선정 과정을 보노라면 기득권 지키기에 혈안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작태는 국민의 정치 혐오감까지 자극한다. 작금에 벌어지는 정치권의 행동 양태를 보면 나라 운영을 맡길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기는 한지 의심스럽다. 도무지 민주주의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정치(politics)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국가의 일(politeia)’이라는 뜻 이외에 ‘공손함(politesse)’의 뜻을 갖고 있는데, 그들에게서 이런 기본적 예의나 교양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들의 무례를 보노라면 분노가 치민다. 이들 정치인의 태도는 국민의 건강한 상식과 애국심조차 허물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운명을 이들에게 맡길 수 없다. 우리 영혼을 그들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관할 수도 없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경고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유일한 방안은 시민의식 각성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만이 우리 사회를 위기에서 지킬 수 있다. 민주주의자만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이제 일부 종교 세력과 정치권으로부터 우리 삶이 위협받지 않으려면 신뢰, 존중, 공정, 연대의 정신을 강화하고 민주적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치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자율적 영역인 시민사회가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시민의 권리의식과 자격을 갖춘 시민적 역량만이 위험사회를 구출할 수 있다.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에서 자각된 유권자가 정치권을 심판해야 한다. 한 표의 투표가 우리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부산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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