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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사람, 김용희 /황경민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4.06 19:16
봄꽃이 지천이다. 꽃은 ‘거리두기’ 따위는 모르는지 담벼락에, 거리에, 화분에, 산에, 들에, 보도블록 틈새에 지천으로 널렸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눅이 든 나는 봄꽃이 아까워 마음이 바쁘다. 그나마 코로나와 상관없이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세상에 ‘화관(코로나)’을 못 두르는 것은 인간종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든다.

바이러스는 시민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마스크 착용’은 예절을 뛰어넘어 습관이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안전을 담보하는 준칙이 됐다. 가족이지만 실상 학원으로, 직장으로 떠돌며 얼굴 볼 일이 드물었던 식구들이 상봉했으며, 날마다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기적’이 일어났다. 공기는 맑아졌고, 물이 깨끗해졌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유난히 손이 하얘진 사람(백수)이 늘어났다. 불과 두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여기저기서 고립감과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 사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일정은 어김없이 진행됐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어 서열만 살짝 바꾼 신종 변이 비례 위성 정당이 거대 정당 주변에서 더불어, 앞다퉈 탄생했다. 이상하고 요상할 뿐만 아니라 경우의 수와 백분율을 동원해도 이해가 될동말동한 개정된 선거법 아래서 이중, 삼중으로 난립한 정당 때문에 유권자는 이중, 삼중의 판단을 요구받고, 이중구속을 당하고 만 상태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옛말일 뿐, ‘민주주의’는 어렵고 복잡하고 난삽하게 이중 삼중으로 자란다는 게 증명됐다. 아울러 선거에서만큼은 ‘정치적 거리두기’를 용납할 수 없다는 캠페인이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바야흐로 미시와 거시, 가시와 비가시의 경계와 거리가 무너진 채 꽃과 코로나와 선거가 함께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2020년 4월을 사는 누구에게나 닥친 이 사태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선지자처럼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수행하고 있으며, 허경영과 달리 실제 공중부양 중이다. 어떤 비말도 그에게 닿지 않고, 어떤 꽃도, ‘민주주의의 꽃’마저도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다. 25m의 철탑 위에서 302일째 살고 있는, 초지일관 무노조(무균)경영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다.

다만 그의 ‘거리두기’가 코로나가 촉발시킨 ‘사회적 거리두기’와 다른 점은, 밀집·밀착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 때문이 아니라, 고립과 배제의 ‘사회적 격차(거리)’에 대한 고발이 목적이라는 거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일반적이고 상식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노동조합을 불법적이고 반헌법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삼성이라는 별’과의 아득한 거리 때문에 25m 허공에 둥지를 튼 것이다. (별 세 개의 삼성과 변종 위성정당의 수가 겹쳐 보이는 건 나만의 착시일까.) 지상 25m 높이에서 302일째 살고 있는 그의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거리(격차, 배제, 고립)를 두지 말라는 주장(선언)인 셈이다.

김용희 씨는 이미 묻고 있었다. 꽃이 피기 전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 이전에 그는 묻고 있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누구냐고, 자본가와 노동자에게 이렇게 차별적으로 거리를 두고 적용되는 게 민주주의냐고, 만약 그 거리가 민주주의라면 그 민주주의 사회에서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며칠 전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제 끝나냐고, 답답해 죽겠다고. 불과 두 달인데도 그렇다. 김용희 씨는 25m 허공에서 저 홀로 열 달이다. 대한민국에는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사람들이 있다. 고립된 사람들, 잊힌 사람들, 호명되지 않는 사람들, 지워진 사람들이 있다. 눈에 보이질 않아서 안전/불안전의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사람이 지금 죽음 직전에 있다.

만약 김용희 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죽음’을 허공에 전시한 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헤세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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