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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거짓과 위선, 탈중국화의 일본사례 /이호철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20.04.05 19:38
도산 안창호는 거짓을 망국의 원인으로 보고, “우리는 죽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했다. 이승만도 1904년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지금 대한과 청국을 이처럼 결딴낸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거짓을 행한 것이 그 첫째라 할 수 있다…. 남을 잘 속이는 자를 총명하다거나 지혜롭다고 하며, 잘 속이지 못하는 자는 곧 반편이라거나 천진이라고 한다…. 거짓말과 거짓 꾀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는데, 이것을 예절이라고도 하고, 이것을 세상 살아가는 태도라고도 하고….”

조선과 중국은 도덕과 예를 중시하는 유교 국가였는데 왜 거짓과 위선의 망국이 되었을까? 반면 같은 유교권인 일본은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18세기, 일본은 중화사상의 허구성을 깨닫고 중국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자각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문명의 하나인 중화문명은 오랜 기간 주변국에 압도적인 영향을 주었다. 중화사상의 핵심은 덕치주의와 화이질서(華夷秩序)이다. 천하는 덕(德)으로 통치해야 하는데 덕을 가진 자는 천자인 중국 황제이므로 중국만이 유일한 문명국이고 다른 나라는 야만의 오랑캐라는 것이다. 덕치의 중심 사상은 유교였다. 중세 이후, 유교는 주자의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주자학은 그 실천방법으로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정성스러운 뜻과 바른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닦고 집안을 다스리면(修身·齊家)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천하도 평안해진다(治國·平天下)고 가르쳤다.

에도시대 일본도 주자학을 막부의 통치철학으로 받아들였다. 막부는 주자학을 관학으로 정하고 관학에서는 주자학 이외 강의를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막부 직영 학교에 한정됐기에 일반 백성 사회는 별 관계가 없었다. 도쿄 오사카 등 큰 상업도시나 각 번의 도읍에서는 주자학 이외의 다양한 학문이 생겨날 수 있었다. 일본 재야 유학자 가운데 주자학에 반기를 든 사상가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개인 욕망을 버리고 열심히 학문을 닦고 수양하면 절로 국가가 평안히 다스려진다는 주자학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공자나 맹자의 본래 가르침인 어짐(仁)이나 의로움(義) 등이 도덕의 기준으로 낫고, 통치방식도 예절 형벌 정령 등 요순시대 정치제도를 따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보았다.

주자학 비판에 이어 유교와 중화사상 자체를 부정하는 ‘국학(國學)’이 등장했다. 1730년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동양의학을 공부해 서 의사가 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는 한학을 배워 일본 고대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일본의 고대소설인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를 해설하면서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소설은 헤이안(平安) 귀족인 주인공을 둘러싼 암투와 여성 편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정과 불륜, 권력싸움 등 유교의 도덕관이 용납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진솔한 이야기라고 보았다. 모토오리는 기쁘면 기쁘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솔직히 표현해야지, 유학자들처럼 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애써 눈 감아 버리는 것은 위선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본래 잘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데, 유학자들은 이를 외면하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이며 위선이다. 그는 유교뿐 아니라 나아가 중국이 문명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야만국이라는 오만과 허세, 과장에 가득 찬 중국 정신을 말끔히 씻어버리라고 했다. 이로써 일본에서는 중국의 틀에서 벗어나 일본 독자의 가치관을 갖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희로애락의 감정과 잘살아 보려는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럼에도 경직된 주자학은 본성을 감추는 것을 오히려 예절이라고 치켜세워, 거짓을 체화시켰다. 또 중화사상은 이런 예절의 잣대로 서구와 주변 국가들을 낮춰보는 자기중심에 빠져 있었다. 이런 문제를 파악한 일본은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에는 한학 양학 국학이 공존했다. 탈중국화에 성공한 덕분에 일본은 세계 각국 최고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여 국력을 키우고 문명화를 이룰 수 있었다.

니혼대학 상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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