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최고의 부를 이룬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명목적인 소득을 보여주는 GDP(국내총생산)는 대략 20조4128억 달러(2017년 기준)다. 나라가 잘살면 뭐하나, 개인이 가난하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닌가. 실질소득을 보여주는 1인당 GNI(국민총소득)를 따져보면 순위는 바뀐다. 미국의 1인당 GNI(6만700달러) 순위는 8위로 떨어진다. 1위는 싱가포르(8만5020달러)로, 미국보다 2만 달러나 많다. 어느 나라가 더 부자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부자 나라의 국민이라고 꼭 행복할까. 행복지수로 보면 순위는 또 바뀐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2019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56개국 중 가장 행복한 나라는 핀란드였다. 그것도 2년 연속이란다. 핀란드의 GDP는 2895억 달러로 40위이고, 1인당 GNI는 4만3720달러로 20위다. 반면 남수단(156위) 아프가니스탄(154위) 예멘(151위) 시리아(149위) 등 절대 빈곤과 내전에 시달리는 나라는 최하위 군을 형성했다. 경제적 부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유일한 척도는 아니라는 사실이 순위에 잘 반영돼 있다.

배 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게 사람 마음이다. 불평등은 ‘소득 수준’이 아니라 ‘소득 차이’의 문제이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는 계층 간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 커진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일수록 사회안전망은 잘 짜여있다. 사회복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핀란드 역시 이웃나라 스웨덴 노르웨이와 함께 북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꼽힌다. 인구 500만여 명의 작은 나라이지만, 1980년대 이후 농업 임업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첨단산업을 핵심으로 하는 산업 선진국으로 변화에 성공했다. 보육비 의료비 연금 노인복지 사회복지 사업 등은 국가가 거의 무상 제공한다. 학비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료지만, 승급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기 위해 유급 제도가 있다고 한다.1인당 GNI 3만 달러 시대를 맞은 우리 국민은 얼마나 행복할까. SDSN 순위로는 54위다. 명목상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만, 행복 순위에는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 소득 양극화, 고용 불안, 계층 갈등 등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 탓으로 보인다. 국민 행복의 중요한 토대인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사회복지시스템의 강화와 기업 경쟁력은 상반된 메커니즘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겼으면 한다.

정순백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