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을 논하는 공청회가 있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2시간 동안 계속되는 공청회를 지켜봤다.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공청회는 참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기 보다는 주관하는 자들의 입장표명 자리로 끝나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 있다. 이날도 발제자와 지정토론자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다 사용하고 일반인의 의견 개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공청회가 되려면 발제는 30분 정도로 줄이고 1시간30분 이상을 토론과 의견 개진 시간으로 할애해야 한다. 이는 공청회 진행의 문제이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의 진행과정과 내용이 보여준 문제점이다.

우선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이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이 각각 따로 준비 중이란 점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됐는가.

부산시가 부산문화재단의 존재와 기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전국 광역시도 모두 각 지역에 문화재단을 설립한 근본적 이유는 각 지자체의 문화관광체육국이 전문성을 가지고 지역문화 진흥을 담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전문가 집단을 구성해서 지역문화 진흥을 전담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지역문화 정책의 입안이나 실행은 기본적으로 문화재단에 위임되어야 한다. 부산시는 문화진흥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에 전념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재단이 지역문화 진흥의 중심체가 되어나가야 하지만 현 실정은 갈수록 관 주도의 문화행정이 강화되어 나가고 있다. 이는 결국 지역문화를 관변화시키는 문화정책의 퇴행이다. 무엇보다 시 산하 출자출연기관이란 점에서 투자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다른 출자출연기관과 동일한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문화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수입이 창출되는 영역이 아니다. 많은 지원과 투자를 계속해 시간이 지나면 그 어느 영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화산업으로 성장해나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 과제를 부산연구원에 연구 용역으로 맡긴 자체가 여전히 부산시가 부산문화재단의 역할과 기능을 단순한 하청기관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부산시의 문화진흥을 위한 정책 입안이나 실행은 부산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단도 정책기획실의 기능을 보강하고 강화해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두 개의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통합되고 체계화된 하나의 ‘부산문화 2030 비전과 전략’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우리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은 그동안 준비하고, 여론 수렴을 통해 정리되었다는 실질적인 내용이다. 우선 비전과 가치를 살펴보자. 비전은 ‘문화로 행복한 시민, 글로벌 해양문화도시 부산’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비전은 일반시민에게 부드러우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서기 보다는 구호에 가깝게 느껴진다. 언어적 율동감도 미감도 감각하기 힘들다. 이는 이미 식상화된 단어들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 개념은 해양성, 다양성, 창의성, 혁신성으로 잡았다. 이 중 ‘해양성’은 부산지역문화의 본질적인 개념으로서 변별성을 갖지만 다양성, 창의성, 혁신성은 어느 지역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문화적 가치이기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문화가 지향할 가치를 정립할 때는 문화의 보편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지역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줄 수 있는 특수성에 더 방점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문화분권은 연목구어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10개 전략에 따른 29개의 과제이다. 이 과제들은 대부분 그동안 항상 제기돼온 것을 종합 나열해놓은 상태이다.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어온 부산 지역의 문화적 과제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과제들을 연차적으로 어떤 우선순위에 의해 해결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도별 계획과 이에 따른 예산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일정에 쫓겨 발표를 서두르기 보다는 더 많은 비판의 소리를 수용해 두 개의 ‘부산문화 2030 비전’이 아니라 하나의 부산문화 비전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