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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는 곳은 언제나 히로시마였다. 갈 때마다 평화기념공원이나 세계평화기념성당 등 히로시마의 여러 곳을 기도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닌다고 했다. 가끔은 나가사키에도 간다고 했다. 후배는 그것을 두고 ‘그의 가슴속에 있는 죄의식이란 돌들을 하나씩 꺼내서 버리는 행위’라고 표현했다. 그만의 한국식 살풀이라는 것이다. 물리학 박사인 그는 10년 전까지는 원자력연구소에 있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양심이 엄격했다. 일본이 비록 전범국가지만 가공할 만한 전쟁무기 앞에선 피해자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자신이 그 일에 직접 가담하진 않았지만, 물리학자인 이상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가해자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지속적으로 사과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말 속에는 독일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들어 있었다.
국민의 역사의식은 역사교육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독일은 꾸준히 그 노력을 했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히틀러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히틀러에 대한 각종 자료를 스스로 수집하여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 과제로 나가는데, 후배의 아들은 그때 사람이 사람을 그토록 잔혹하게 살상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괴로워하더라 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면 2년 동안 20세기 독일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교육은 나치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숨김없이 가르쳐 그들이 전범국가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그 과정에서 독일국민이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빠짐없이 정확하게 배우는 만큼 잘못된 역사에 대해 책임감과 속죄의식을 갖는 태도가 길러진다. 그처럼 그들은 수치스러운 역사를 결코 감추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하지 않는다. 과오를 솔직히 인정한 후 나치 정권 피해자들에게 철저히 보상했고 사죄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하고 있다.
서독의 4대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해 바르샤바 유대인학살 추모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메르켈 총리도 2007년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기념관을 찾아 희생자들에게 머리 숙여 사죄했다. 그녀는 2015년 1월 26일 아우슈비츠수용소 해방 70주년을 앞두고는 “독일인은 수백만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면서 “아우슈비츠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국가의 책임의식은 바로 국민의 역사의식이다. 국민은 교육을 통해 그것을 습득한다. 자랑스러운 역사도, 부끄러운 역사도 자신의 것임을 인정할 때 진정한 선진국가가 된다. 그런데 일본은 국가도, 개인도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감추려고만 든다. 과거를 인정하고 참회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지만 많은 사람은 전범국가라는 인식이 없거나 희박하다. 지금은 소식이 끊긴 한 일본인 지인은 한국을 아주 좋아한다고 말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한국문화나 음식에 대한 이해나 사랑이 깊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다가 역사문제가 나오면 인상이 굳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 많은 징용자의 강제동원도 없었다며, 한국인의 주장이 과도하다고 했다.
이처럼 독일과 일본이 지난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판이하다. 독일이 철저하게 전범국가로서의 역사교육을 함으로써 세계인류에 더는 부끄러움이 없는 민족으로 거듭나는 것에 비해 일본은 자신들이 전범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새삼 군국주의적 팽창 의도를 드러내면서 불화를 야기한다.
아베 총리는 최근 조난당한 북한의 선박 수색과정에서 일어난 레이더 갈등과 일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 한국 내 재산 압류 판결을 두고 ‘함께 만든 룰을 지켜야 한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라’고 적반하장의 말을 하고 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했는데 우리의 이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이다. 하지만 그들과 공존하는 것도 능력이다.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그것이 지금 우리가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인 듯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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