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성인’이라는 용어가 있다. 후세 인류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을 때 흔히 거론된다. 통상적으로 석가모니와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를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많다. 위대한 사상가를 굳이 4명으로 한정한 것도 모순이거니와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도 애매하다는 논리다. 예컨대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여기에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다.

이후에 4대 성인의 면면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나 공자가 이 범주에 들어가다 보니 중국으로서는 큰 자부심을 가질 법하다. 문화대혁명 당시 ‘반혁명세력’ ‘기생충’이라 지칭하며 깎아내렸던 공자를 중국 정부가 다시 찬양하고 나선 데는 이런 사실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 나아가 중국은 세계 각국의 대학과 협력해 설립하는 자국 교육기관에도 ‘공자학원’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2004년부터 운영된 공자학원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 525곳(138개 국가)이나 된다. 우리나라에도 각 대학에 20여 곳이 있다. 중국 교육부는 비영리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을 통해 언어와 자국 문화를 전파하는 일을 한다. 중국은 현지인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좋자 2020년까지 공자학원을 1000곳으로 늘린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런 공자학원이 지금 미국에서 서리를 맞고 있다. 대학들이 잇달아 공자학원 폐쇄 움직임에 동참하고부터다. 미시건대학은 최근 내년에 계약을 해지한다는 방침을 중국 측에 전달했다. 노스플로리다대학과 시카고대학,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등도 더는 공자학원을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계약 해지의 표면적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양국 간 무역전쟁 격화로 촉발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미국 정치권에서는 공자학원이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한 도구라는 말까지 나온다. 심지어 이 교육기관을 중국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로비단체’로 등록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됐다.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운영자금 출처 등이 외부로 노출되기 때문에 공자학원의 향후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중국 측에서는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뛴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 하지만 지금의 사태를 보면 참 냉정한 게 국제관계라는 말에는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다.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