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부터 시작돼 2박3일 동안 진행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돌아왔다.

평양공동선언문에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문구를 포함했고,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조선반도가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해나가기로 ‘확약’했다”는 말도 이끌어냈다.

‘확약’이 이행된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해소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이 구체화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현재의 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서 회담의 성과를 둘러싼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약속도 받아냈고, 15만 북한 군중 앞에서 “우리 함께 새 미래로 나가자”는 파격 연설로 기립박수도 받았다. 방북 마지막 날인 20일에는 나란히 손잡고 백두산을 오르는,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을 연출해냈다.

결과뿐만 아니다. 과정은 더욱 화려했다. 문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김 위원장이 직접 나타나 오랜 친구와 재회하듯 포옹을 나눈 뒤 두 손을 잡고 악수했다. 과거 정상회담 때와 달리 예포를 발사했고, 의장대 사열과 무개차 퍼레이드 등 북한정권으로부터 최고의 환대를 받았다.

북한의 ‘핵 리스트 신고’와 핵 폐기 일정 등 일부 핵심사안이 빠지기는 했지만, 이번 방북 정상회담은 대성공이라고 자평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수준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합의한 대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동의는 물론이지만, 야당과도 함께 가야 한다. 김 위원장을 설득하듯 야당도 설득해나가야 한다. 당장 국회에 제출된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의 온전한 처리를 위해서도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방북 첫날인 지난 18일 발표한 만찬사를 통해 “김 위원장과 나는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손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고 넘어왔던 사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이후 세 번째 만남을 통해 세기의 독재자로 평가받던 사람을 ‘연인’에 비유할 정도로 관계가 급진전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과의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한 만큼 이제 대승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편만이 ‘정의’이고, 반대편은 ‘불의’라는 생각으로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으니 당신들은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은 안 된다.

불행히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가 국회의장단과 여야 정당 대표들을 평양 정상회담에 초청하는 과정이 딱 그랬다. 정당 대표들을 초청하면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전 조율도 거치지 않고 기자회견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아라’의 도발이었다. 오죽하면 여당 출신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 시간 만에 불참을 통보했을까. 거기다가 50대 초반의 임 실장은 백전노장 정당 대표들에게 “어지러운 한국 정치에 ‘꽃할배’ 같은 신선함으로 우리에게 오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롱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임 실장을 질책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불참을 통보한 야당 대표들에게 “제발 당리당략을 거두어달라”고 질타했다.

이번뿐만 아니다. 지난번 ‘협치’ 때도 그랬다. 야당과는 아무런 사전조율 없이 뜬금없이 협치를 언급했다가 슬그머니 없었던 일로 하지 않았던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권의 소통능력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어제까지 핵실험을 하고 국제사회를 위협했던 김정은 위원장을 포용했듯 야당도 포용해야 한다. 제1야당을 적폐의 몸통으로 생각해서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물론 야당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국정운영의 1차적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있다. 소통을 위해서는 야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 후속 조치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극구 반대하는 후보자에 대해서는 지명을 철회하는 양보도 필요하다.

평양을 다녀온 문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야당을 대할지 주목된다. 취임하자마자 야당 당사를 찾아 “소통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던 문 대통령의 초심을 기대해본다.

서울본부장·정치부장 thrkk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