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공동취재단의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가 막판에 성사됐다. 북한은 어제 오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남측 취재단 명단을 접수했다. 통일부가 지난 18일 북한에 명단 전달을 시도한 지 엿새 만이다. 이에 8명으로 구성된 남측 취재단이 정부 수송기를 타고 원산 갈마비행장으로 간 뒤 열차를 이용해 풍계리로 이동했다. 북한이 뒤늦게라도 남측 기자들의 현장 취재를 허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한의 남측 취재단 방북 거부는 아무런 명분이 없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때 남한 언론인들을 초청하겠다는 약속은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먼저 제의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어긴다는 것은 “남과 북이 합의한 모든 사안은 반드시 지켜 대결과 반목의 시대를 끝내자”는 판문점선언의 취지에도 역행하는 행동이었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계라 여겨지는 역사적인 행사에 외신기자만을 참석시킨 채 남측 취재단을 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었다. 북한은 남측 취재단 명단을 접수하지 않다가 돌연 입장을 바꾼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최고 존엄’이라는 김 위원장이 한 약속을 스스로 어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벌어질 남북접촉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목적으로 ‘남한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내에서 남남갈등을 유도하려 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뭐였든 이번 남측 취재단과 관련된 일련의 행보는 우려스러웠던 게 분명했다. 올 들어 급속하게 화해국면으로 접어든 남북관계에도 위기감을 던져줬다.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드러난 북한의 달라진 모습에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졌던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결과도 불러왔다. 북한은 모처럼 구축된 남북 간 상호신뢰가 깨진다면 남는 것은 이전과 같은 적대감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이 판문점선언에 걸맞은 행동을 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