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아 남의 말 말자스라

내가 남 말하면 남도 내 말하는 것이

말로서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말 홍수 시대에 작자 미상의 위 시조가 주는 교훈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내가 남의 말을 하면 그 상대도 내 말을 하게 마련이고, 결국 말 때문에 말이 많아지니 말로서 일어나는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말을 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죠.

한형조 교수는 ‘허접한 꽃들의 축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내가 비난해 마지않는 바로 그 사람이다. 우리는 서로 손가락질하고 있다. 내 손가락질은 옳고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은 틀린 것일까? 나는 참으로 추악하고 잔인해진 이 기괴한 사회의 일원으로 그것을 만드는 데 책임이 있다. 이 책임을 느낄 때, 무엇인가가 바뀔 것이다’ 라고.

하지만 손가락질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분열과 갈등의 책임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책임을 느껴야 말수도 줄어들고 세상도 바뀔 건데 오히려 자기만 옳고 자기만 잘났다고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하다 보니 상대를 향한 손가락질 끝에 말투는 더 거칠어져 말 전쟁판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이 말 전쟁을 끝내고 평화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개의 열쇠 중 그 첫째가 경청(傾聽)입니다. 경청은 우리가 이미 그 뜻을 잘 알고 있어도 지키기는 쉽지 않은 덕목인데 들을 청(聽)자를 파자해보면 경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들을 청(聽)자는 귀 이(耳) 밑에 임금 왕(王), 열 십(十)에 눈 목(目) 그리고 한 일(一) 아래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청(聽)자는 백성의 말을 잘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임금의 귀, 또 백성의 형편을 살뜰하게 살펴보는 임금의 눈길, 그리고 지극 정성으로 백성의 어려움을 챙겨보는 임금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라는 거지요.

둘째는 말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말수를 줄이면 말실수도 줄일 수 있고 상대의 말도 좀 더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부산 영도이기 때문에 수평선과 마주할 때가 많은데, 저는 수평선에서 거대한 사람의 입술을 보았습니다. 하늘은 윗입술이고 바다는 아랫입술이지요. 맑았다 흐렸다 하는 날씨 변화에 따라 바다는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지만 수평선은 흔들림 없이 한결같습니다. 사람들의 뒤채는 입방아에도 위아래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심지 굳은 사람처럼 말이죠. 어쩌면 사람의 속내가 저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말 전쟁을 멈추고 평화의 문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소중한 열쇠는 품격 있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말은 문화 그 자체인데 사람들이 쓰는 말이 언제부턴가 모르게 점점 거칠어지고 천박해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며칠 전 남포동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겪은 일인데 뒤에 앉은 두 청년의 대화를 무심결에 듣다가 너무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 청년들은 욕을 대화의 추임새로 쓰고 있었던 거지요. 그들은 남포동에 도착할 때까지 새로 나온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은 흥분한 목소리로 ‘존나 재미있다’와 ‘개 신기해’를 열 번 이상, ‘시바’ ‘헐’ ‘새끼’를 또 조미료처럼 사용하더군요. 그런 말을 쓰면서도 그 청년들은 너무나 당당했고, 표정이나 말투로 봐서는 자기들이 쓰는 말의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언어문화가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조차 그 청년들 못지않게 거칠고 천박한 말을 사용해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특히 여야 정치인들이 금도를 넘는 막말 때문에 말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명심보감 정기편(定己篇)에 보면 태공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을 저울질하려거든 반드시 먼저 스스로를 저울질하라. 남을 다치게 하는 말은 도리어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는 것이니, 피를 머금고 남에게 뿜으면 먼저 내 입이 더러워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손가락질할 때 손가락 방향을 살펴보면 검지는 상대를 향하지만 나머지 손가락 네 개는 삿대질하는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올해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는 해군요. 지방선거를 축제처럼 치러 좋은 분이 뽑히길 기대하지만 이제까지 선거문화로 봐선 거친 말 때문에 세상이 얼마나 또 시끄러워질지 벌써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말 전쟁을 끝내줄 세 개의 열쇠를 잘 갈무리하고 가끔 바다를 찾아 수평선의 깊은 속내를 되새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해동중 교사·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