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 씨가 2012년 자신의 SNS에 재미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이른바 유병재식 사과문 해석법이다. ‘반평생을 넘나드는 TV 시청과 다년간의 연구로 나는 드디어 공적 영역에서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이 연구가 앞으로의 공식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라고 시작한다. 각종 공개 사과에서 하는 말의 속내를 나름대로 해석한 내용이다.

유 씨의 해석은 이렇다. ‘많은 고민 끝에 용기를 냈습니다=까먹을 줄 알았더니’. ‘본의 아니게=예상과는 다르게’. ‘사실 여부를 떠나=사실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그르다’. ‘경솔하게 행동한 점=치밀하지 못했던 점’ 등이다. 우스갯소리처럼 들리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통렬한 비판이다.

실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정치인, 기업인, 문화예술인 등 유명 인사들의 숱한 사과를 접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터. 그럴 듯한 단어로 포장했지만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과를 한다면서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다 화를 더욱 키우곤 한다. 십중팔구 매를 덜려다 되레 매를 버는 셈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두 번의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대한항공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공개적 사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조언이 넘쳐난다. 핵심은 별반 다르지 않다. ‘누가 누구에게 왜 미안한지 밝혀라’ ‘사족을 떼라’ ‘신속하라’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 등이다. 요컨대 구질구질하게 변명 말고 빠르면서도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진정성을 보이라는 것이다. 뜯어보면 이게 사과의 본질인데 무슨 기술로까지 포장돼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성추행 파문에 휩싸인 이윤택 씨가 화끈하게 매를 버는 사과의 요건을 하나 추가했다. 이 씨가 사과 기자회견 전 리허설까지 했다고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하는 한 배우가 폭로했다. 예상 질문을 하게 하고 답변은 물론 불쌍한 표정 연기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것이다. 평생을 연극과 함께한 연출가답다고 해야 하나. 유병재식으로 해석하자면 ‘불쌍한 표정=인생은 연극이야’쯤 될까. 한 번 발을 잘못 디딘 사과가 점점 더 그를 늪 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장재건 논설실장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