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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일이었지만 막막한 미래에 불안과 무력감은 날로 쌓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부전도서관 2층 열람실에 들러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가 김점선이라는 화가가 쓴 글을 만나게 되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 많은 방황 끝에 본인이 좋아하는 화가라는 길에 들어선 과정을 적은 자전 에세이였는데, 당시 내 처지와 상당 부분 겹쳐 깊이 인상에 남았다.
그 이후 나는 한 친구의 인생 변화 과정을 지켜보듯 다양한 매체를 통해 김점선이란 화가의 소식을 접했다. 그녀가 쓴 칼럼 일부는 지금도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그녀의 그림만 취급하는 화방을 우연히 발견하였고 그곳에서 구입한 그림엽서를 액자에 넣어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지금도 즐기고 있다. 그 수많은 책과 글 중에 답답하리만치 올곧기만 한 김점선이란 화가를 알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내가 일본 도쿄에 머물던 동안 “어느 곳이 가장 인상에 남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리마도서관’이라고 답했다. 네리마도서관은 내가 살던 우리 동네 도서관이다. 우리 동네를 익히느라 시간 날 때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마주친 네리마도서관을 잊을 수가 없다. 그곳은 특별히 더 돈을 들인 곳도 아닌 평범한 도서관이다. 하지만 문화가 일상생활권 내에서 주민 바로 곁에 존재하는 단골식당처럼 이용되고 있었고, 정결하고 깔끔한 환경은 누가 청소를 해서가 아니라 내 공간을 스스로 지켜낸 결과임을 보면서 이것이 공공건물의 전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화장실은 용무를 보는 곳이고 약국은 약을 사러 가는 곳이라면 도서관은 뭐 하는 곳일까. 지금은 지자체마다 투자유치에 힘을 쏟고 있지만 엄혹한 시절 매판자본이라며 어떻게든 저지하며 자주 경제를 논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날도 심포지엄에서 마지막 의례 멘트인 “질문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한 학생이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어보았느냐”고 발제자에게 물었다. 나는 그때 그 질문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물론과 유심론은 링이 다르므로 그 둘을 같은 장에서 다룰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 모든 것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므로 종합적으로 보아야만 하고 또 그 어떤 제도나 시스템도 마음을 스스로 채워가는 힘이 병행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과 ICT 융합에 대해 논하고,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해 병을 예방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니 도서관도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이 갖는 고유의 가치와 근원적인 역할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 교훈을 얻고 현재를 개선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어느 한 시제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있는 통찰을 준비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누가 등 떠밀어 가는 곳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담아내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도서관이라고 믿는다. 2009년 3월 개점한 부산 해운대 신세계 백화점과 2016년 개점한 신세계 센텀시티몰의 콘셉트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백화점에 비해 신세계 센텀시티몰은 적어도 “잠깐 하늘도 보세요. 차 한잔 하세요”라며 배치해 놓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의처럼 시민과 시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눈높이가 올라가면 눈높이에 맞춰 좋은 것을 제공할 수밖에 없고 좋은 것을 제공받으면 좋은 것을 즐길 줄 아는 문화의 품위도 올라간다.
고단한 삶에 숨구멍이 되어주었고 갈 곳 없던 나를 받아주었던 부전도서관에 나는 항상 빚진 기분이다. 내가 그랬듯 새 부전도서관에서도 힘과 용기를 얻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1963년 지어진 부산 첫 공공도서관인 부전도서관은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원형 보존을 둘러싸고 논란 끝에 현재 행정안전부의 조정 과정에 들어가 있다.
여행 가면 그 도시의 대학을 가보곤 했는데 다음엔 도서관을 콘셉트로 정하고 가볼까 한다. 그러면 그 도시의 현재와 함께 미래도 보일 것이다.
부산시 국제협력과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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