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솔아, 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면 너 아니구 네 엄마.” 1984년에 나온 ‘내 이름 예솔아’라는 동요 가사의 일부다. 자녀 이름에 아내를 지칭하는 의미까지 담아 부르는 우리 관습을 재미있게 포착한 가사다. 작사자는 “어머니를 예솔아, 하고 부르는 건 내 이름 어디에 엄마가 들어계시기 때문일 거야”라고 가사에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이처럼 이름과 멜로디를 결합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서양에서도 유명 작곡가들이 선호했다. ‘도-레-미-파-솔-라-시’ 계명에 ‘C-D-E-F-G-A-B(독일어 H)’라는 일곱 자의 알파벳 음명을 대응시켜 작곡하는 기법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자신의 이름 ‘바흐’를 ‘B-A-C-H(영어 B)’라는 네 음표의 음렬(音列)로 만들어 곡에 삽입했다. 만년의 걸작 ‘푸가의 기법’을 비롯해 크리스마스 코랄 ‘높은 하늘에서 나는 왔도다’ 변주곡 등 여러 작품에 이 음렬이 나타난다. 자신의 메시지를 녹인 일종의 ‘문자 암호’라고 할 수 있겠다.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은 ‘아베그 변주곡’에서 작품의 주제를 ‘A-B-E-G-G’라는 다섯 음렬로 구성했다. 이 작품을 헌정한 ‘파울리네 폰 아베그’란 여인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슈만을 몹시 존경했던 요하네스 브람스도 이 기법을 즐겨 썼다. 대표적인 게 ‘F-A-E’ 음렬이다. 이는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문구 ‘Frei aber einsam’의 머리글자로, 당대의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이 자신의 음악관을 담아 쓴 표어였다고 한다. 옛 소련의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이 기법을 자주 썼다. 그는 자신의 이름 일부를 독일어로 표기한 ‘D-S-C-H’ 음렬을 ‘현악4중주 8번’ ‘바이올린협주곡 1번’ ‘교향곡 10번’ 등 작품들에 집어넣어 표현했다.음악은 아니지만, 요즘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장소의 하나인 강원도 강릉 컬링경기장에서도 ‘문자 암호’가 음악처럼 울려 퍼져 눈길을 끌고 있다. 컬링 여자대표팀 주장(스킵) 김은정이 동료 김영미에게 작전 지시를 할 때 쓰는 ‘영미’란 말이다. “영미! 영미!” 하고 짧게 외치는 건 ‘빨리 비질하라’는 뜻이며, “영미~ 영미~”라고 길게 부르는 것은 ‘기다리라’는 의미다. 한국팀은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 힘입어 출전국들 중 가장 먼저 준결승전에 올랐다. ‘영미’ 소리가 국민의 기를 살리는 활력소로 다가온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