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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가 개헌안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개헌안 도출이 어렵다면 정부가 중심이 되어 대통령 발의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헌법 128조는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6·13지방선거와 함께 개헌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하면서, 이에 대해 부정적인 야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5·9대선을 앞두고 모든 후보는 개헌, 그것도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고 결국 파면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국민과 정치권 모두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여권은 이른바 ‘촛불혁명’의 열기가 뜨거울 때 개헌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야권의 입장은 정반대다. 가뜩이나 불리한 상황에서 개헌의 열기에 휩싸이면 지방선거에서 완패할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대선공약을 파기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지방선거와 동시 국민투표의 개헌프로세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대표가 내세우는 반대 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번 지방선거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되어야 하는데, 개헌문제가 뒤섞이게 되면 초점이 흐려진다. 둘째,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면 아무래도 현 여권에 우호적인 20·30세대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더욱 불리한 선거구도가 되기 때문에 이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수 있다. 모든 것을 접어두고라도 현행 87헌법 아래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불행한 임기 말과 임기 후를 경험했다. 대통령 권력은 막강한데 실제 국정 운영의 권한은 그리 크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이 그토록 목을 매다시피 한 법률안이 원만하게 국회를 통과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검찰·경찰·국정원·감사원·국세청·금융위원회의 인사를 장악하고 있는 대통령은 말 그대로 ‘제왕’이다. 그렇다면 개헌은 필요하다. 아니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그런데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따져가면서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자칫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 오히려 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바람몰이한다고 말로만 지청구할 일이 아니다. 실제 무엇이 그런 것인지를 하나하나 따지면서 국민을 설득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2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헌 의총을 통해 자신들이 지향하는 개헌의 구체적인 방향에 대해 개략적인 대강(大綱)을 확정했다. 야당은 여당의 개헌안이 ‘사회민주주의’에 터 잡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한다. 그런데 정작 국민은 무엇이 위험 요인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야권은 무작정 피할 일이 아니다. 권력 구조도 중요하지만 헌법상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선거 전략의 측면에서도 개헌을 두고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야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가뜩이나 불리한 선거구도 아래에서 인물난과 이슈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야당은 개헌 방향을 축(軸)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오히려 기사회생의 기회일 수 있다.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학자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정종섭 의원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자신만의 개헌의 대강을 선보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조지 레이코프의 이야기다.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히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개헌의 구체적 안을 만들고 자신만의 비전을 선보이며 국민을 설득해나간다면 정국운영의 주도권도 쥘 수 있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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