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대에서 코를 팽팽 풀다가 문득 방구석을 보았을 때, 나는 기쁘게도 알레르기의 또 다른 원인을 찾아냈다. 검은 곰팡이가 비닐 장판을 비집고 올라와 축축한 벽을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당장에 장판을 당겨 뒤집어 보자, 젖은 포자가 장판 아래 한창 까맣게 자라는 게 보였다. 태풍 예보가 있었던 오후 두 시, 나는 왠지 모를 광기에 눈을 반짝이며 가구를 모두 거실로 옮기고, 장판을 벗겨 둘둘 말아 마당에 내놓고, 커터 칼로 벽지를 뜯기 시작했다. 전 세입자, 전전 세입자, 또 그 전 세입자들이 이사 들어올 때마다 덧발라 붙인 벽지는 총 일곱 겹이었다. 한겹 한겹 사이에 검은 곰팡이가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래, 이거였어, 나의 비염과 천식은 여기로부터 왔어. 콧물을 줄줄 흘리며 4시간 동안 분투한 끝에 50ℓ 비닐봉지로 열두 봉지를 꽉 채운 벽지가 사면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여섯 겹을 벗겨냈으나, 시멘트벽에 밀착된 마지막 한 겹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다수의 블로거는 증기를 쐬면 효과가 좋다고 했다. 스팀다리미가 집에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단단히 붙어봤자 종이 한 겹에 불과한 벽지는 증기를 쐬고 천 원짜리 쇠주걱을 갖다 대자마자 견디지 못하고 죽죽 벗겨졌다.
벽지를 벗겨내고 나서 내가 발견한 것은, 가장 안쪽에 동물의 가죽처럼 단단히 붙어 있는 종이같이 얇은 스티로폼 초배지였다. 대체 무엇으로 붙인 건지, 쇠주걱으로 아무리 긁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꽤 오랜 시간 검색한 결과는 딱 한 명이 명석한 결괏값을 제시하고 있었다. ‘토치로 열을 쐬어 녹으면 긁어내세요.’ 왜 집에 토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부탄가스 주입구에 연결해 사용하는 토치가 있었다. 벽지를 벗겨내느라 하룻밤을 꼴딱 샜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멈추지 않았다. 벽지 일곱 겹과 초배지를 벗겨내고 커피를 다섯 잔 마신 나는 마치 내 껍데기를 벗겨내듯, 육신인지 영혼인지 허위인지 위선인지 기만인지 모를, 그런 껍데기를 활활 벗어던진 후에, 강렬한 불꽃을 방 전체에 쏘았다. 플라스틱이 타는 악취를 풍기며 비닐 초배지가 통쾌하게 녹아내렸다. 불면에 속박된 나는 ‘으하하 다 죽어라’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초배지를 모조리 박박 긁어냈다. 장판 아래에 촘촘히 깔린 곰팡이는 락스로 불려 쇠수세미로 싹 닦아내고, 마른걸레로 일일이 훔친 후 다시 불로 구웠다. 곰팡이의 씨를 말려버릴 작정이었다. 두 눈은 충혈되고 양쪽 팔과 어깨, 허리는 진통제를 세 알이나 먹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내친김에 북유럽식 방을 꾸미고 싶었다. 32시간을 못 잔 채 나는 밤 10시에 페인트가게 문을 두드려 방수제와 곰팡이 방지 페인트 두 통을 샀다. 이천 원짜리 붓 하나로 벽을 세 번 칠하고 바닥에 방수제를 두 번 바르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내 집도 아닌 월세 집에, 대체 누굴 위해 이러고 있는 거지?
장판 아래의 한 뼘짜리 곰팡이를 발견한 후 총 39시간을 들여, 나는 깨끗한 흰 벽과 새 장판이 깔린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장판 모서리를 잘라 정리하곤 잠깐 웅크려 눕자 이불도 베게도 없이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다섯 시간이 지난 후에 컴컴한 방에서 깨어난 내가 처음 본 것은 어둠 속에서도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벽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비염과 천식은 여전했다. 그제야 내가 뭘 위해 이 미친 작업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오직 나를 위해. 희고 아름다운 방을 가지고 싶었던 나의 소박한 사치를 위해. 나는 비틀거리며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숙면이었다.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