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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3일(음력) 수백 척의 왜선을 타고 온 왜군은 부산진과 동래에 이어 양산, 울산을 침공했다. 육로를 타고 닥치는 대로 성읍을 함락하면서 서울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그러나 한반도 서쪽 해안의 보급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왜군은 더는 진격이 어려워졌다. 왜군은 전쟁 발발 초기와는 달리 이미 옥포해전 한산해전 등에서 이순신의 해군에 의해 기선을 제압당했다. 설상가상으로 명의 참전으로 가도입명(假道入明:명을 정벌하러 가니 길을 빌려 달라)의 꿈은 난관에 봉착했다. 호남으로의 보급로가 차단되고, 북쪽에서는 명군이 가세한 마당에 왜군의 선택은 다시 부산으로의 재집결이었다. 배에서 내린 왜군들은 진지전을 시작했다. 이때 가덕도, 동래, 서생포, 자성대, 기장, 죽성 등 십여 곳의 왜성이 축조됐다. 왜군에게 그만큼 부산이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해 8월 말 부산포 전역에 포진했던 주력 부대에 서울에서 귀환한 육군 병력과 본국에서 증파된 해군병력 등이 집결했다. 절영도와 부산진 앞바다에 왜선 470여 척이 줄지어 정박했고, 병력은 8000여 명에 달했다. 당시로 보면 사실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지휘하는 본영에 다름 아니었다. 아무리 내 땅 안이라고는 하나, 왜군의 병력이 총집결된 본영을 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첩보를 입수한 이순신이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 등과 통합 함대를 편성해 부산을 향해 출진했다. 그 결과 부산포 앞바다에서 왜선 128척 격침, 왜군 5000여 명 사상이라는 전공을 세웠다. 반면 이순신은 총애하던 녹도만호 정운을 비롯해 6명이 전사하기는 했지만, 25명 부상에 판옥선 일부 파손이라는 경미한 손실에 그쳤다. 임진왜란 중 옥포, 한산, 노량, 명량 등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부산대첩을 말하는 것은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일군의 기세를 꺾고 왜군의 세력권을 부산지역으로 제한하는 결정적 전황 전환을 가져온 전투였기 때문이다. 이후 왜군은 한반도로의 진격도 본국으로의 퇴각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날이 바로 1592년 9월 1일이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5일이다. 1980년부터 부산시는 이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했고, 이후 매년 어김없이 ‘부산시민의 날’ 기념식을 연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것은 부산대첩의 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했으면서도, 그 연유나 까닭을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부산시는 해양수도라는 기치 아래 해운물류 등과 관련한 시정 어젠다를 홍보하는 데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부산이야말로 수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의 수혜자이자 동시에 산업화 건설의 견인차이기도 했다. 부산이기에 수출역군으로서의 기능과 역할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렸던 시대 사명도 자랑해야 한다. 그러나, “덩치만 컸지 머리는 비었다”는 비아냥을 피하기 위해 부산역사에 대한 통시적 통찰이 필요하다. 필자는 부산정신의 뿌리를 ‘부산대첩’에서 찾는다는 발상을 존중한다. 미래로 가는 해양수도의 위상이나 이미지에 ‘부산대첩’이 절대 불편할 일도 아니다.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사한 정발 장군이나 동래성에서 전사한 송상현, 그리고 장수가 백성과 성을 버리고 달아난 불의 앞에서도 분연히 일어서 싸웠던 이름 없는 의용단이 이순신의 공을 능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란 미래로 가기 위해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거울이다.
부산시민의 날이라면 마땅히 이순신과 부산대첩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부산이 있기까지 부산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재구성하고, 그 속에서 부산 기질이나 정신을 다시 소환해 오늘에 되살려 내야 하지 않을까?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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