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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냥 말에 그치지 않는다. 말은 인식이다.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드러난다. 말은 사상이다. 평소의 생각이 묻어난다. 말은 협상이다. 말에 따라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어그러지기도 한다. 말이 원인이 되어 싸움이나 갈등으로 연결되는 경우를 일상에서 보는 일은 낯설지 않다.
이와 관련해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인 협상론을 담당했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가 쓴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가 참고가 될 것 같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협상에서 합의에 이른 결정적인 계기가 전문 지식과 관계있는 경우는 8%에 불과했다. 반면 호감이나 신뢰처럼 인간적인 요소가 합의를 이끌어낸 경우가 55%였다. 그리고 협상에 성공한 사례의 37%는 절차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협상에서는 내용보다 절차와 사람이 훨씬 중요하다. 절대로 일방적으로 논의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호감이나 신뢰를 주는 인간적인 요소’에는 표정이나 태도도 있지만 핵심은 말이다. 즉 어떤 화법을 구사하는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이다. 화법은 훈련에 의해 고쳐질 수 있지만 언어는 다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는 그 사람의 성장 과정이나 지적 수준을 보여주고 삶에 대한 태도를 짐작게 한다. 언어는 짧은 노력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흔히 정치는 말이라고 한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말’을 내세워 벌어지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메시지 공방은 오늘도 치열하기만 하다. 상징화된 메시지는 힘을 얻는다. 공감을 얻은 말은 현실적 힘을 갖는다.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여 행동으로 이끈다. 정치인들이 울림 있는 메시지를 내놓기 위해 고심하는 이유이다. 메시지의 수준이 곧 정치인의 수준이다.이런 측면에서 돋보이는 이가 이낙연 국무총리이다. 지난 11, 1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답변이 상징적이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이 “최근에 MBC KBS가 불공정 보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 총리는 “꽤 오래전부터 (MBC, KBS를) 잘 안 본다.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하면서 ‘한국이 대북 대화를 구걸하는 거지 같다’고 말했다는 기사도 나왔다”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질의에는 “김 의원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한국은 삼권분립 국가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 1인제다”라고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이 공격하자 “조금 전에 삼권분립을 체험하지 않았나”라고 맞받았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것을 지칭한 답변이었다.
이 총리는 투박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감성에 호소하며 낮은 자세로 답변했다.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창까지 품어 안으며 상대를 무력화시켰다. 단순하게 ‘언변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일이 아니다. 상당한 내공이다. 20여 년 동안 동아일보에 근무한 기자 출신이라는 점, 국회의원 4선을 지낸 만만찮은 경력, 전남지사를 역임한 행정 경험 등이 어우러지면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언어로 뿜어져 나왔다. 이 총리의 답변은 정치 언어의 ‘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이 총리와 비교되면서 상대적으로 도드라진 정치인들도 있다. 사법시험 동기(24회)에 정치 입문 동기(1996년)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대표적이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추 대표와 홍 대표는 과거 적대적 공존을 하던 양당제의 미몽에 빠져 마치 막말 동맹을 맺은 것 같다”고 했다. 추 대표는 ‘머리 자르기’ 발언에 이어 최근에는 “땡깡을 부리고 골목대장질 한다”며 국민의당을 비판했다가 사과했다. 홍 대표는 바른정당을 향해 “첩은 첩일 뿐이다”라고 하는 등 진작부터 부적절한 말을 했다. 집권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가 이런 일로 자꾸 오르내린다는 것은 우리 정치의 불행이다.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싶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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