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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이야기로 길게 에둘렀으나,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서정주의 사후 평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것이다. 많은 이가 서정주의 친일과 독재 권력에 아첨한 논쟁적 이력에 대해서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반복되었던 변호의 논리 중의 하나가, 작가의 허물과 작품의 성취를 구분해야 한다는 일종의 분리론이었다. 그런 분리의 논리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당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그 분리론은 어김없이 등장하였다. 좋은 품성의 사람이라고 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인품의 파탄자도 괜찮은 글을 지어낼 수가 있다. 글이란 인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재능으로 쓰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인적 인격이 글쓰기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근대적인 예술, 그러니까 낭만주의 사조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것을 일컬어 작품은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것이라 하기도 한다.
이따금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학자가 제자에게 몹쓸 짓을 해서 구속되는 사례도 이와 다른 문제가 아니다. 글이나 작가를 숭앙하거나 신비화하는 우리의 문화는 낭만주의 전통의 오랜 관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도 근대적인 적폐의 습속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글의 문제에 앞서 그 행위가 먼저 문제시되어야 한다. 서정주의 글은 문학적 성취의 결과물이기 이전에 윤리적 행위의 산물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시를 썼다. 그 시는 그냥 글이 아니라 식민지하의 청년들을 침략 전쟁에 동원하는 부역의 행위로써 쓰인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단죄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런 글로써 타락한 권력에 부역한 그 행위를 단죄해야 하는가. 글이 다만 글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거대한 관료제의 톱니바퀴로, 자신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에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명령을 수행할 때 어떤 참상이 벌어질 것을 알면서도 그 명령을 따랐다. 그는 명령을 따르는 행위를 함으로써 반인도 범죄를 저질렀고, 역사의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작가에게는 글쓰기가 곧 그의 행동이다. 글이 그의 인격을 반영하지 않는다고는 해도, 그 글을 쓰는 행위는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둑 일기’의 작가 장 주네는 좀도둑질에서부터 남창, 강도, 탈영 등 온갖 범죄로 점철된 생을 살다가 결국에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장 주네는 그의 문재(文才)를 알아본 사르트르, 장 콕도, 미셸 푸코와 같은 저명인사들의 탄원서에 힘입어 풀려날 수가 있었다. 미당과는 어떻게 다른가. 장 주네의 글은 죄가 없다. 아니, 그는 글을 쓰는 행위로써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글을 썼다. 그러므로 그의 글쓰기는 무죄다. 글을 쓰는 행위로써 자기의 범죄자적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쳤기 때문에, 그의 범죄적 행위마저도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묻고 싶다. 미당의 문학적 성취는 무엇인가? 그 성취는 과연 그의 역사적 반역을 대속(代贖)할 만한 것인가? 글은 단지 글이 아니다. 글은 사람에 의해 쓰이는 것이고, 쓴다는 것은 곧 하나의 행위이며 행동이다. 무릇 모든 행위와 행동에는 대가와 책임이 따른다. 이번 전집에 미당의 부역시가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동아대 한문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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