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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뒤에도 주말에도 공 차러 가요…부산의 골 때리는 그녀들

여성 풋살팀 ‘슛퍼우먼’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 2022.06.22 19:34
- 부산아이파크 저변 넓히려 올해 개설
- 1·2기 모집마감 인기… 3기 문의 쇄도

- 격한 팀플레이 희열과 스트레스 해소
- “약 먹고 뛰어요” 부상도 못 막는 열정
- 연말 아마추어대회 입상 목표 구슬땀

“슛! 슛! 나이스!!”

지난 주말 부산 부산진구 준타스 풋살 아레나. 경기 시작 후 하프라인을 분주히 오가던 공이 마침내 골망을 흔들었다. 패스한 공이 골 문 앞 선수의 발끝에 닿자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와 공이 들어갔어!” 환호가 터져나왔다.

몸풀기 때만 해도 장난치고 깔깔 웃던 아마추어 선수들은 지름 20㎝의 공 앞에선 표정이 돌변했다. 경기시간(전·후반) 15분 내내 공을 놓치지 않으려고 드리블하고 패스했다. 공을 앞뒤로 굴리거나 몸을 틀어 상대를 따돌리는가 하면 전력질주도 마다 않았다. 숨이 거칠어지고 움직임은 둔해졌지만 끊임없이 골문을 두드렸다. 흔히 떠올리는 중장년 조기축구회의 풍경이 아니다. 결성된 지 1~3개월이 된 2030 아마추어 여자 풋살팀 ‘슛퍼우먼’의 모습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진을 빼는 더위였지만 필드 위 선수들의 열기는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이 운영하는 아마추어 여자 풋살팀 ‘슛퍼우먼’의 한 회원이 슛 연습을 하고 있다.
■슛퍼우먼의 탄생

축구, 특히 아마추어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수십 분간 드넓은 경기장을 쉴 틈 없이 누벼야 하는 경기 방식은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든 보통의 여자들에게는 필드가 아닌 응원석만이 허락됐다. 강습 중심의 개인 운동 시장이 주를 이루면서 팀을 짜고 서로 맞붙는 단체스포츠는 마치 ‘금녀의 벽’이 세워진 것처럼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최근 여자 축구가 ‘보는 축구’에서 ‘뛰는 축구’로 변화하고 있다. 여자 축구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이 화제를 끌면서 저변이 확대된 덕이 크다. 땀 범벅이 되도록 필드를 종횡무진 하고 과감하게 몸을 부딪히며 공을 사수하는 모습이나 동료와 함께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나누는 모습, 잘 빠진 몸매보다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출연진의 모습이 여자들을 필드로 끌어당기고 있다.

지난 19일 부산 부산진구 준타스 풋살 아레나에서 아마추어 여자 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부산에 연고를 둔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도 여자 축구 저변 확대를 위해 풋살반 ‘슛퍼우먼’을 올해 초 개설했다. 부산아이파크 관계자는 “부산은 여자 엘리트 축구팀이 전무한 상황이라 생활체육에서부터 여자 축구를 활성화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며 “지난해 말 이벤트 형태로 진행한 ‘슛퍼우먼’ 콘텐츠 반응이 매우 좋았고, 정규 클래스에 대한 문의가 쇄도해 올해 초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축구에 대한 여자들의 갈증은 회원 모집 시작과 함께 확인됐다. 12명 정원의 1기의 경우 모집 개시 하루 만에 마감됐다. 지난 5월 모집을 시작한 2기도 최근 정원을 빠르게 채웠다. 벌써부터 3기 모집 문의가 들어오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두겠다는 희망자도 있어 추가 개설을 논의 중이다.

“해외축구, K리그의 오랜 팬이에요. 그동안 축구 경기를 보기만 했는데 예능을 통해 ‘여자도 축구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축구장을 막 뛰고 싶더라구요. 남편도 적극 지지해주겠다고 해서 공고 뜨자마자 신청했어요. 오늘도 제가 공 차러 나오면 남편은 집안일 하면서 도와주는 식이죠. 주변에서 다들 응원해주세요.”(이지혜)

여자 축구가 활기를 띠면서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올 하반기 여자 풋살 대회를 신설한다는 소식이다. 슛퍼우먼은 단기적 목표로 대회 출전을 준비한다. 아이파크 관계자는 “‘골 때리는 그녀들’ 흥행으로 대학생 직장인 중심 여자 축구 동아리와 동호회가 많이 생겨나는 추세”라며 “올 하반기 대회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지역 여자 축구팀과 연습경기 등을 추진하고 활발한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자 풋살팀 ‘슛퍼우먼’ 단체사진. 부산아이파크 제공
■낮엔 직장인, 밤엔 슛퍼우먼

슛퍼우먼은 주 2회 훈련을 진행한다. 직장인이 퇴근 후 또는 주말에 두세 시간씩 빼서 체력을 소진하는 운동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직장인인 슛퍼우먼은 높은 출석률을 자랑한다. 이들을 필드로 끌어내는 축구의 매력은 뭘까. 팀원들과 땀 흘리면서 하는 운동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체력도 크게 개선됐다. 처음엔 3분도 뛰기 힘들었는데 5분, 7분으로 늘어나더니 이날은 15분 경기를 쉬지 않고 뛰었다.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가 축구에 도전해봤는데, 막상 해보니 땀 흘리며 뛰는 게 정말 재밌어요. 특히 여러 사람과 어울려서 함께 하는 것도 좋아요. 소리 지르면서 스트레스도 풀고요.”(이재나) “숨이 차고 체력 소모도 크지만 팀플레이 하는 즐거움이 힘든 걸 모두 잊게 만드는 것 같아요.”(권아진)

몸을 부딪히며 승부를 다투는 스포츠라 부상 걱정은 없는지 물어보자 “몸 걱정하면 여기 못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파서 테이핑하고 병원에서 약 먹어가며 뛰고 있어요. 그만큼 축구가 좋은거죠.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오늘 뛰고싶어서 예정보다 일찍 퇴원하고 왔다니까요.”(김지현) “서로 매너 지키면서 하니까 부상 걱정은 크게 안해요. 힘 조절이 안 될 때도 있는데 코치님이 잘 조절해주셔서 선수끼리 부딪혀 다치는 건 없어요.”(이지혜)

경기 시작하기 전 부상 방지를 위해 몸풀기 하는 모습. 이원준 기자
예능 프로그램은 흥행했지만 여자 축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낯설다. 주변 반응에서 느낀다. ‘신기하다’는 얘길 가장 많이 듣는다고 했다. ‘멋지다’는 응원은 이들을 더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걸 찾느냐고 물어요. 축구가 체력적으론 힘들지만 재밌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요. 그래서 굳이 왜 하느냐는 친구도 있고요. 멋있다, 잘할 것 같다는 얘기 들으면 힘이 나죠.”(권아진)

이제 막 공을 차기 시작한 이들의 목표는 ‘오래 하고 싶다’였다. “꾸준히 오래 차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실력 향상은 두 번째, 올 가을 아마추어 대회 나가서 소기의 성적이라도 내는 게 세 번째에요. 몇 팀이나 나올 지 모르겠지만 3위 안에 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이재나) “남들이 취미 뭐냐고 물어보면 축구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하는 게 목표에요. 풋살장이 아니라 축구장에서 진짜 경기를 해보고도 싶고요.”(최은영)

대화가 끝날 때쯤 김지현 씨가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부산시에 바람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는 여자 전용 풋살구장이 하나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좀 더 많은 여자들이 축구에 매력을 느끼고 저변도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슛퍼우먼 1기 이남영 코치

- “숨 헐떡여도 웃음 가득 … 실력 걱정말고 필드서 자신감 찾길”

“어제보다 오늘 실력이 향상되면 성공한 거에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훈련이 행복해지는거죠. 오늘 보세요. 경기 뛰느라 숨 차고 땀이 흐르는데도 다들 웃고 있잖아요.”

부산아이파크 여자 풋살팀 ‘슛퍼우먼’ 1기 코치인 이남영(사진) 코치는 자신의 운동 철학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코치는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단이 슛퍼우먼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영입한 지도자다. 부산아이파크 U10, 아이키즈 총괄 코치를 역임하고, 아시아축구연맹 B라이센스를 비롯해 한국풋살연합회 풋살 지도자 자격증 3급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여자 코치라 선수들과 교감이 잘 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어렸을 때부터 부산에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부산은 스포츠보다 문화, 관광 쪽으로 주목을 하다 보니까 여자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항상 여자 축구 저변 확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이 파장을 일으키면서 제 마음과 일치되는 시대가 열린 거죠.”

그는 여자 축구 훈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성공의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는 대체로 남자보다 운동 기능이 부족합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길 그렇고, 후천적으론 어렸을 때부터 남자와 운동으로 경쟁하면 실패하니까, 재미가 없어서 더 멀리하게 된 거죠. 운동의 동기 부여가 되는 생각이 남자가 ‘상대를 이기고 싶다’라면 여자는 ‘내가 할 수 있다’에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성공 경험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습니다.”

축구 경험이 없거나 운동 신경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처음은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잘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스포츠를 하는 동안 자신의 기분이 중요해요.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잡으면 되는 거죠. 내가 팀에 피해를 주면 어쩌지, 패스를 잘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하지 마세요.”

이 코치는 ‘슛퍼우먼’의 성장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누구나 축구를 하고 싶다면 실력과 상관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리그가 최종 목표라고 했다. “슛퍼우먼을 포함해 부산지역 대학생 직장인 축구팀 교류가 활발해지고 주중·주말리그도 열리는, 정말 우리 삶에 밀접한 생활체육으로서 여자 축구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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